노아의 홍수 (13) - 의인과 교회
방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방주에 부정한 짐승과 정한 짐승이 같이 탑승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부정한 것이 정한 것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방주의 주인인 노아가 의인이었기 때문이고, 또한 방주가 지금의 교회에 대한 예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다는 것은 의인의 조건이 어떤 것인지, 또한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공존시킬수 있는 사람과 공동체 그것이라는 것이다.
선악과의 문제로 볼 때, 선악과와 선악과를 먹은 것은 다른 명제이다. 선악과 자체는 어떤 것으로도 문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선악과가 에덴 동산의 중앙에 있었다는 것이 방증하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다만 그 선악과를 먹고서 사람이 선과 악을 알게 되려 한 것이 죄의 근원이 된 것이다.
이것은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리하면 죄가 된다는 것이지 공존한다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람은 누구나 다 부정한 삶의 특성과 본성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영원토록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사람을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본성을 나누어 악한 것을 삶에서 분리하려 하려는 시각이 문제의 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먼저는 사람을 심판함이고, 다음으로는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지 사람이 서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보고 선하다 악하다 구분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 그것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을 자기가 가진 선과 악의 기준으로 심판하는 자리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을 볼 때, 그 안에 부정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세상에서 분리된 방주로 들일 수 있는 사람은 노아와 같이 의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럴 수 있어야 교회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사람은 굳이 남이 아니라도 스스로가 자신 안에 있는 본성을 심판하여 그런 모습으로는 하나님께 갈 수 없다고 하여 자신의 일부를 저주하고, 교회도 부정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어릴적에 유년주일학교를 간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검정 고무신을 신고 놀다가 예배당 마루바닥을 시커먼 발로 돌아다니니까 그것을 누가 꾸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그 이야기가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그게 사실이 아니라도 그런 모습은 교회에서 늘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교회의 참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선악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먹어버린 교회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여기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자기가 가진 정함의 법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규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어떤 선과 악에 대한 판단 기준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성경은 선악과를 먹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인인 노아의 방주, 그러니까 의인이 주인이되는 교회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방주의 참 모습도, 또한 교회의 참 모습도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