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설교 중에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 인용이 있다. 말세에 남종과 여종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겠다는 예언, 자녀들은 예언하고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라는 유명한 내용이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예언.(요엘서의 해설은 블로그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1)

 

이 예언에서 먼저 생각할 것은 이 예언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세>라고 한 것이다. 사람들은 말세라고 하면 그저 이 지구의 멸망으로 확정하여 생각하는데, 성경이 말하는 말세는 자기 세상, 자기가 생각하는 의로움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종말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의로움과 하나님의 생각으로 봐야 하는데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세상을 조명하고, 판단하고, 확정한다. 그런 사람의 생각과 자기 주장이 끝나는 때가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말세>.

 

이치적으로도 그렇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고, 하나님의 생각이며 말씀이다. 따라서 이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임하려면 세상을 보는 사람의 생각과 의와 뜻과 기준이 없어져야 한다. 한 사람 안에 하나님의 세상과 자기가 정의하는 세상, 이 두 가지가 공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가진 자기 의로움이 사라질 때, 더 정확히는 자기가 세상을 재단하는 의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게 죄라는 걸 알고 시인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의 영이 임하신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은 자기 세상의 종말

 

이러한 말세에는 하나님께서 영을 부어주신다는 것 외에도 여러 징후가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고 했다. 이같은 예언은 자주 인용된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해가 어두워진다는 건 곧 빛이 없어진다는 뜻인데, 이는 인식하는 기준과 조건이 어두워진다는 의미다. 우리가 어떤 세계를 바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빛이 비췬다', '눈을 떴다'고 말하는 반면, 어떤 세계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면 '컴맹', '문맹'처럼 어둡다고 한다. 해가 어두워진다는 건 이처럼 자기 의로움으로 세상을 조명하는 빛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예언은 이어 나오는 '누구든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한다. 아무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구원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다. '누구든지''아무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개념에서 그 한정하는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누구든지는 아무나가 아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 그 누구든지는 바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진 사람, 자기가 가진 의의 기준으로 세상을 정의하고 조명하며 살던 세상이 종말을 맞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 구원은 주의 이름을 부른 부름의 대답인 셈이다. 그러려면 사람이 부른 이름이 하나님의 정체성과 일치해야 한다. 이름은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존재의 신이신데 부르는 사람은 행위를 드리면 소유로 갚아 주시는 신으로 하나님을 부르면 정체성이 같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답하지 않으신다. 길을 가는데 누군가가 '엄마' 혹은 '아빠'라고 부르면 자녀 있는 사람이 돌아보긴 하겠지만 자기 자녀가 부르는 게 아닌 게 확인되면 이내 답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자기 의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 사람이 구원을 얻는 누구든지에 속하는 사람이다.

 

또한 구원도 같은 맥락이다. 하나님이 베푸는 구원과 사람이 원하는 구원이 같아야 의미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 안으로 들어오는 걸 구원으로 여기시는 하나님께 삶의 위기와 어려움에서 구해주시는 걸 구원으로 여기는 간구는 의미가 없다. 죄에서 단번에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내내 회개하는 사람이 말하는 죄도, 구원도 일치하지 않는다. 죄의 개념과 구원의 개념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이 구하는 간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주여!, 주여!'라고 외치지만 의미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을 부름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이건 있어도 되고, 없으면 그만인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으로 볼 성경 말씀이 아니다. 분명히 이해하고, 확실히 알아 자신이 그 '누구든지'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어야 한다. 이건 영혼과 영원히 나의 문제가 되는 구원의 문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정체성과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 호소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생각해야 한다. 자기 의로움으로 세상을 조명하고, 판단하고, 확정하는 자기 세상이 종말을 맞이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존재 목적 그 하나만이 자기 의로움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불러야 구원을 얻는다. 육신의 삶이 당면한 어려움에서 구원을 구하거나, 하나님이 생각과 달리 행위로 범한 죄에서 구원받기를 바라는 구원은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얻을 수 있는 구원이 아니다. 그건 하나님의 정체성과 사람의 존재 목적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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