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에 관해서 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만물 중에 성경이 의미가 있는 존재는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인정하든 하지 않든 성향은 중요하지 않다. 성경을 그렇게 다양하게 대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세상에는 사람 뿐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향해 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성경의 시작이 창세기인 것이다. 그리고 그 창세기는 천지를 창조하는 과정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창세기의 시작은 어떻게 그리스도라는 개념이 열리고 그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세계를 살게 되는지 그 과정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 우주와 지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말씀하시고자 함이 아니라, 한 사람의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인식 안에 그리스도의 세계가 열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4차원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지인을 이야기 할 때, "그 사람은 다른 세상에 산다"라고 한다. 동일한 시대 동일한 공간을 살아가면서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물건이나 사건을 봐도 그 사람의 해석과 안목과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성경, 창세기가 말하는 태초, 그리고 창조된 세상도 이 성경을 읽고 들으면서 그 안에서 전혀 다른 가치관과 안목이 생겨나서 육신으로 동일하게 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른 가치관으로 다른 안목으로 보기 시작하게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름의 정의를 <하나님의 세계>라고 정의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세계라는 것이다.
즉 육신으로 동일한 시대를 공유하고 살아도 어떤 사람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안목으로 보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이다. 이 천지는 하나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 안에 하나님의 세계가 열려서 하나님 세계의 법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성품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자는 모든 것을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살아감과 같다. 그래서 그는 과학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볼 때 과학적 안목으로 보고, 과학적으로 가치 있는 것에 투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가치관이 천지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자기 안에 형성된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고, 하나님이 보실 때 가치 있는 것에 투자한다.
하나님의 세계가 열린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미지를 알게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 하나님의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과학자를 통해서 과학이라는 이미지를 우리가 인지하는 것과 마차가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안목이 열린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미지와 성품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인 것이다.
(계속)
'평교인의 성경 보기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천지창조는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4) (0) | 2013.09.15 |
---|---|
(창세기) 천지창조는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3) (0) | 2013.09.15 |
(창세기) 천지창조는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 (1) (0) | 2013.09.13 |
(창세기) 천지창조 여섯째 날 (12) -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 (0) | 2013.09.10 |
(창세기) 천지창조 여섯째 날 (11) - 천지창조는 가치관의 변화 (0) | 2013.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