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

Category : 말씀과 삶/복음 담론 Date : 2026. 10. 26. 10:24 Writer : 김홍덕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은 신앙의 푯대의 한 모습으로 인식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까?’라는 질문도 간간이 들을 수 있습니다. 신앙 세계 전반에서 ‘인격’, ‘인격적인 하나님’은 좋은 의미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게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걸 의문이라고 인정하기 싫다면, 이건 어떨까요? “인격이란 무엇입니까?”

 

인격은 법적, 철학적, 사회적 개념입니다. 접근하는 학문의 성격에 따라 색감이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대변합니다. 사람의 존재 가치에 대한 대표적인 표현이 바로 ‘인격’입니다. 사람이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다만 인격이라는 말은 사람이 자기 가치를 부여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가치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치라는 건 혼자 부여하는 게 아닙니다. 가치는 놀랍게도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걸 혼자서 귀하게 여긴다는 건 가치가 아닙니다. 특히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이 존귀하게 된다는 건 일단 쌍방의 기준이 같은 가치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상기해 보면 사람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기에 사람이 둘 사이의 관계에서 가치를 설정할 수 없는 위치입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는 ‘인격’은 누구 정한 가치일까요?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을 둔 인격은 사람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가치입니다. 법적, 철학적, 사회적 사람의 가치가 인격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이 부여하신다는 관점에서 보면 인격을 지탱하는 사람이 부여한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미가 없는 가치입니다. 물론 인격이 하나님 앞에서 무의미하다는 건 우리가 가진 일반적인 가치 통념으로 볼 때 다소 극단적인 관점입니다.

 

하지만 그건 하나님께서 사람의 어떤 가치도 인정하지 않을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인격이나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말로 스스로 부여한 가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다면 사람이 가치를 부여한 인격이라는 건 하찮은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부여한 인격이라는 가치를 부여잡고, 하나님이 나를 그 인격적으로 만나는 걸 매우 중한 일로 수용하는 건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금덩이를 버리고 수석을 챙기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요지는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사람의 가치는 사람이 무슨 개념 있는 것처럼 여기는 ‘인격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이란 말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의 가치와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격이라는 정의와 그 가치의 출처에 대한 묵상이나 상고함 없이 그냥 그럴듯한 말처럼 보이는 명언 효과(사실 출처가 틀리고 의미가 없지만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에 매몰되어 하나님께서 나를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데 감동하거나, 정확히 개념도 모르는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미련한 짓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가치를 사람이 만든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격이라는 말에 의존할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 지를 깨닫는 데서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사람의 가치는 어떤 것이며,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요?

우선 우리는 하나님이라는 존재와 사람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절대자이며, 전지전능한 신이기에 우리의 모든 운명을 결정하는 하늘입니다. 반면에 사람은 그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가치가 존재하기 힘든 역학 구조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실 이유가 별로 없습니다. 말씀만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 각사람은 언제든지 창조하실 수 있는 피조물일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은 딱히 특별한 목적을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피조물이 가치가 낮아지는 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능력이 나타난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중에서 특별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특히나 중요한 건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성품의 성격입니다. 그걸 우리는 익히 아는 사랑인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 이것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image)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시겠다는 것이 바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함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성품을 표현하기 위한 특별한 존재

 

이건 큰 차별점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 특히 우리가 이제 알아가고 있는 우주의 광활함은 누가 봐도 그 위대함을 가늠하기 힘듭니다. 우주로 가지 않아도 지구의 곳곳에서 우리는 ‘자연의 위대함’이라는 말로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함을 표현하는 피조물은 넘쳐나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는 사람이 유일합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위대하고 전능하신 창조주로 믿는다면 이 가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입니다. 사람이 자가발전한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격이라는 가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궁리를 할 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시려는 나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이 본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한 개념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을 논하고 사모할 게 아니라는 것과 사람이 말하는 인격이나 존엄성은 피조물인 주제에 교만히 스스로 부여한 가치 개념이라는 점을 바로 인식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일을 사모할 게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는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정말로 귀한 존재가 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창조주가 부여한 피조물의 가치 이상의 가치는 피조물에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연약하지만 강하며, 낮아지지만 존귀한 성품을 표현할 세상 유일한 존재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그 하나의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 가치의 표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데, 사람이 자기들이 가진 하나님 아들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십자가에 끌고 가니 낮아지고 섬기며 육신을 내어주는 본성에 이끌려 십자가에 육신을 내어주는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존재 가치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존귀한 가치입니다. 그러니까 괜히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 불분명한 말에 현혹되지 말고, 십자가로 보여주신 우리 존재의 목적을 묵상하여 그 하나님의 뜻이 내 생명, 내 본성, 내 삶이 되는 순종을 구하는 것이 진정 우리가 존귀하게 되는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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