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언약에 속한 사람은 형식을 본질로 본다. 그래서 제사의 예법 중 작은 하나도 소홀하거나 규례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도 교회에서 예배 순서나 행사 진행 시 작은 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두고 다투기도 한다. 형식과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본질이 지켜지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도 크게 작용한다.
염소와 황소와 암소의 재로 사람을 정하게 한다고 하니 그것을 지키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은 내용을 알지 못함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니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고 크게 시비를 걸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목적은 염소나 황소를 잡고 암소를 태워 재를 만들어 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정하게 하는 것이 제사의 목적이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율법이 있고 제사와 규례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칫 목적과 결론만 중요하게 여기고 과정은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행위냐 존재냐”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행함이라는 세계 안에서 하나님이 목적을 지향하시는 것을 보면 수단은 불문하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존재의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존재론 안에서 보면 목적과 수단은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는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하다. 본성이 선하면 행함도 선하다. 그러나 방법이나 수단은 불문하고 목적만 이루면 된다고 할 때는 그것이 다르다.
형식은 영원하지 않다. 소 한 마리로 365일 제사를 드릴 수 없다. 문제는 형식을 본질로 보는 시각에서 소 한 마리가 불타고 없어지면 본질이 없어진 것과 같아지므로 또 다시 제사가 필요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기도하고 서원했는데 교회를 나서자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간의 모든 경건함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를 범하면 모든 것을 지키지 않은 것과 같아지는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제물이 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몸도 하나였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제사가 영원한가? 여기에 성령의 비밀이 있다. 예수님께서 드린 제사인 십자가의 의미가 사람 안에 들어가면 성령께서 그것을 생명으로 잉태케하여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 성령이 영원하시니 그리스도의 일이 사람들에게 남아 있기만 하면 이것은 언제나 영원한 제사가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에게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을 사람과 같은 육신으로 와서 보이셨다. 그렇다면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그 목적은 항상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해도 항상 있다. 이미 영원한 상태다. 그 상태에서 사람이 십자가의 일로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함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것을 알게 하시는 이가 또한 영원한 존재인 성령이다.
그런데 이 일은 장래의 일이라고 했다. 이것은 달력으로 장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이시고 성령께서 항상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시는 일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일은 언제나 장래의 일이다.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구원은 항상 장래의 일이다. 군 미필자에게 군대는 항상 장래의 일이다. 그러나 전역하면 군필자로 살아가게 된다. 여권도 단수 여권에서 복수 여권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세상의 본질을 눈에 보이는 것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는 장래의 일이다. 장래의 일이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이다. 대한민국 남자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군필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인생으로 났는데 자신의 존재 목적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알고 살아가는 것은 미완의 삶이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알 기회가 없었다고 핑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으로 난 자는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사람의 존재 목적을 말씀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 1:20)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 눈에 보이는 세상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십분 깨닫고 예수님이 보이신 것을 자기 존재 정체성으로 순종하고 믿으면 성령께서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 나타내신 이것을 본질을 알기 원하면 이 장래의 일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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