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선포했다. 그 뒤에 오시는 분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이다. 물세례가 있고 복음이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 확증한다. 성령 세례가 복음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복음의 시작인 예수님께서 오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성령 세례가 곧 복음의 시작이란 뜻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이 성령 세례가 왜 복음의 시작인지 알 수 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신분인 사형수가 되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마음에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제자들은 달라졌다. 진정한 성령의 강림이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성령이 오시면 모든 것을 알게 하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성령 세례에 대해서 신앙인들은 오류에 빠져 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신비한 일을 경험하는 것을 성령 세례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성령 세례로 인한 현상이지 성령 세례의 본질이 아니다. 성령 세례의 본질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가치로 아무런 가치 없는 예수님이 자기 인생의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실 성령에 대한 성경의 소개는 일정하다. 예수님의 탄생을 두고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했고, 우리의 구원을 ‘성령으로 거듭남’이라고 했으며, 예수님께서 베푸는 세례를 ‘성령 세례’라 했고,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의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모든 표현은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라는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령 세례, 성령강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모두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라는 본성을 가진 생명으로 난다는 것을 표현하는 같은 말씀이다.
그리고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본성을 가진 생명이 된다는 것이 곧 사람에게 복음이라는 것이 마가복음 시작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본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사는 것이니 어떤 존재보다 그리스도를 분명히 아는 것이니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이 되기를 바라시면서 전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모두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성령 세례다.
그렇다면 성령이 오시면,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그것이 곧 성령 세례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쉽게 말하는 구원을 받았다면 성령 세례는 이미 받은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은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성령 세례가 무엇인지 알려고 한다. 구원이 곧 성령 세례이므로 그건 구원을 받지 못한 증거다.
성령 세례는 구원의 증거다. 복음의 시작이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자기 안에서 생명이 되는 사건이다. 그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과 같이, 예수님이 전하신 그리스도라는 생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믿으려 노력하고, 예수님 같이 되려고 노력하고,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공부하는 이 모든 것은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다. 즉 구원을 얻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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