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고 있듯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베드로가 자기가 살려고 예수님을 부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다른 제자들은 도망갔으나 그는 대제사장의 뜰까지 예수님을 보러 갔다. 그리고 로마 식민지 백성으로 독립을 도모하는 열심당 당원으로서 칼을 품에 품고 다닌 사람이다. 자기 살려고 배신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건 사람들의 생각처럼 자기가 살기 위한 배신이 아니다. 그가 모른다고 한 건 그리스도다. 채찍질 당하고 심문받는 그리스도는 생각도, 상상도 해 보지 않은 도무지 모르는 존재이기에 모른다고 한 것이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배신의 부인을 한 게 아니라 자기 심정을 그대로 말한 것이다.
변화산 사건 즈음부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를 질 것이란 말씀을 하셨다. 제자들에게 이건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기대한 나라의 독립과 가난 해결이 요원해진 건 차치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진다는 걸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건 세상에 없던 개념이었다.
이로 인한 제자들의 갈등은 지속되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면 좋은 자리를 달라고 했을 때나, 처음 십자가를 진다고 하셨을 때 적극적으로 만류했을 때 예수님은 아주 단호했다. 오히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시며 만류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책망하기까지 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 제자들은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이런 갈등 속에 가룟 유다는 결국 예수님은 자기가 기대한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조급한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사람이 원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았다. 어쩌면 가장 먼저 인정한 사람이었다. 다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하지만 나머지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믿음을 기준으로 갈등했다. 베드로도 그랬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그리스도인지 끝까지 확인하고 싶었다. 다른 면에서 보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건 확실히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매 맞는 그리스도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기에 매 맞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너도 저와 한패다" 했을 때, 매 맞는 그리스도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라고 시인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믿음과는 어쩌면 별개로 채찍질 당하는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모른다고 답한 것이다.
베드로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부인이다, 배신이다' 말한다. 하지만 배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게 아니다. 오히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다고 말하는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오늘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지, 내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가 정말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말 오늘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를 알고 있을까? 오히려 그들은 알지도 못하는 그리스도를 안다고 거짓 증거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사실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를 모른다. 베드로는 그런 그리스도를 솔직하게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인들은 그런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정작 평안과 성공을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에게 구한다.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를 안다면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일인데 그러고 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은 그리스도를 안다며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다고 말한다. 적반하장인 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십자가를 진 패배자 예수님께 세상 성공을 구하는 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아니 그건 부인이 아니라 모독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매 맞는 그리스도,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는 모른다고 했다. 사실 몰랐다. 몰라서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다고 말한다. 정작 자신은 세상의 실패자로 십자가를 진 예수님께 세상에서의 성공을 구하는 모순 속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다고 말한다. 정말로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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