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초 한국 사회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큰 소리는 아니지만 교회가 좌편향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관망하고 있다는 걸 비판하는 소리도 있다. 물론 이는 보수 쪽 이야기라고 봐야 한다. 이런 중에 교회의 좌경화라는 이슈, 좌경화가 부담스럽다면 진보화라고 해도 되는 신앙적 관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미 이야기가 보수적 관점의 논조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 원리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은 이상하게 바꾸어 놔서 오히려 어색한 사도신경의 옛 버전에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는 고백이 있다. 그런데, 정작 기도는 다르다. 주일 예배 시간에 주로 장로들이 하는 대표기도, 물론 주일 예배가 아닌 다른 집회에서도 '세상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니 바로 잡아 주시길' 기도한다. 원색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나님, 당신이 경영하는 세상이 엉망이 됐어!"라는 항의다. 그러면서 또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실수도 하지 않는다"라고. 황당한 모순이다. 더 황당한 건 이걸 모순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온전하게 경영하신다는 믿음은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가장 근간에 속한다. 그렇다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은 이 근간에 속한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가난이나 불평등의 문제를 신앙으로 가져와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기독교의 본질인 양 사회주의적이고 진보적인 가치관을 선언하는 건 소위 말하는 깨어 있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문제를 해결하러 온 메시아라고 믿는 것이다. 개념 없이 보면 여기까지도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난한 자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은 향유 옥합 사건 때 하신 말씀이다.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기대는 로마로부터의 독립, 가난 해결, 병든 자의 회복과 같은 세상 문제 해결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크게 환호했지만, 가난한 자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버렸고, 유대인들은 가난을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필요 없다고 강도 바라바를 선택했다. 성경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정체성은 뭔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가난이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물론이고 기독교 색채가 아주 강한 초강대국 미국에서도 사회 문제 해결이 기독교 신앙 최고의 과제인 것처럼 나서고 있다. 가난한 자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 복 받는 일이라고 외치고 있다. 사회적 문제의식과 교묘히 간음한 신앙은 당연히 사회주의나 다양성 같은 진보적 가치관과 결합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끼리끼리 노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니다. 또한 사람이 보기에 너무나 엉망이 된 세상은 하나님께서 경영을 잘못하셔서 이런 꼴이 된 게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온전하게 경영하시는데 이걸 사람이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면서 문제로 만들어 웃기지도 않게 신앙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불에 기름을 붓듯 자기 삶이 사회적 문제 속에 있다는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기도 한다. 대형 교회가 굳이 필요 없는 수억 원짜리 파이프 오르간을 배경으로 가난을 해결해야 한다고 외치는 촌극을 찬양하고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세상은 "내가 옳다"는 사람 때문에 시끄러워진다.
이런 여러 신앙의 상식적 사고만으로도 교회는 진보나 좌경화가 될 수 없는 공동체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난은 세상에 있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왜 그걸 신앙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 그건 사회의 문제이고, 가이사의 것이며, 그들에게 맡기고 순종하면 되는 일이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이 맡긴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겠다는 무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신 분이 아닌가?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세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그건 예수님을 모욕하고 배반하고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일이다.
그렇다면 세상 문제에 신앙은 외면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떤 사회적 일에는 봉기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2025년 한국 사회의 탄핵 반대 운동이 여기 속한다고 본다. 문제는 가치관과 동기다. 사회에 문제가 있으니 이를 신앙으로 해결하자며 봉기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지만, 그런 잘못된 가치관을 향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임을 외치는 건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온전하게 경영하시는 분이라는 신앙을 안에서 보면, 신앙으로 가난을 해결하려 하는 외침은 거룩해 보이지만, 사실은 거만한 골리앗의 모욕으로 들린다.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 위에 있는 가치관은 세상의 문제를 대중적 신앙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그렇게 사는 사람이 교회와 공동체를 이루면서 늘어나면 그것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 가치관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온전하게 다스리신다는 믿음도 없이 어떻게 목사가 되어 강대상에서 세상 문제를 해결하자고 외칠 수 있는지 그 무식한 양심을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교회가 진보적 관점과 사회주의 이념 혹은 아류에 매몰되어 신앙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외치는 건 자기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고, 정통이라는 양의 탈을 쓴 이단 늑대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온전하게 다스리신다는 이 믿음 하나만 있어도 교회는 사회주의를 멀리하게 되어 있다. 이 믿음 하나가 없는 교회를 하나님을 믿는 교회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냥 이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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