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하나님 은혜의 섭리다. 회개는 그 구원으로 가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자의적이고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의지라는 것도 이런 이유로 사람에게 주어졌다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 맘대로 해도 되는 건 아니다. 하나님의 의와 뜻과 법과 계획 안에 있는 회개여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죄로 여기는 상태에 자기가 있었다는 고백이 있어야 하고, 돌이켜서 가는 방향이 하나님의 의에 합당해야 한다.
회개는 구원을 얻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능동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회개를 과거 관점에서 이해한다. 지난 잘못을 돌이키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개는 그 의미 자체가 가던 길을 돌아간다는 의미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출발이고, 본론은 이전과 다른 삶과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회개가 있었다면,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이 되었을 것이므로 이전과 같은 회개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기도할 때마다 어제와 같은 죄를 회개하는 사람은 온전히 회개한 사람이 아니다.
이를 정리하면 하나님이 죄로 여기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로 사는 생명이 되었다면 다시 회개할 일이 없는 게 합당하다. 이건 성경에만 있는 예외 조항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 견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약속하셨고, 생명이 바뀌면 이전 생명 본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지극히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사람들은 날마다 회개한다. 이게 맞는 일인가?
십자가로 모든 죄를 사했다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면, 매일 회개하는 일이 있을 수 있나?
이런 모순에 매몰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고 오랫동안 예수 믿고 심지어 목사인데 그럴 수 있겠나 싶겠지만, 그게 아니면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십자가로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회개하고 있다면 하나님과 다른 세계에 있는 것 외에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죄로 여기는 걸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에 아직도, 날마다 회개하는 것이다.
우린 지금 그 괴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이 흐릿하고 불분명한 신앙 세계, 그렇게 흐릿하고 분명하지 않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안일함 그리고 다들 그렇게 하니 이렇게 온전하지 않은 믿음으로도 된다는 큰 낭패가 예정된 그릇된 확신을 바로 잡고자 외 회색 성경이라 명명한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건 앞서 언급한 그릇된 확신은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라는 것이다.
다시 회개라는 주제에 집중해서, 회개해야 하는 죄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와 목적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목적으로 창조된 사람이 자기가 옳다는 걸 주장하고 성취하려는 삶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더 정확히는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진 거듭난 생명으로 나서 사는 게 회개의 본질이다. 자기가 아무리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아직 회개하고 있다면 그건 최소한 본성이 바뀐 건 아니다. 본성이 바뀌지 않았다면 생명이 바뀐 게 아니므로 결국 회개한 게 아닌 셈이다.
이런 문제는 죄의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은 행위를 기준으로 죄를 가늠하고 심판한다. 하지만 성경은 피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말씀으로 '하나님은 행위와 같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 '행위로 의로워질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은 행위를 바로 잡는 데 느끼는 한계를 면소하거나 완화하는 명분을 제공하는 말씀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원천적으로 행위로 죄를 판단하지 않는 말씀이다.
이렇게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행위로 모든 걸 판단한다. 하나님께서는 존재의 회개를 바라시는데 행위를 회개한다. 존재는 바뀌면 항상성이 있지만 행위는 그렇지 않다. 늑대가 양으로 거듭난다면 고기 먹는 게 뭔지도 모르는 존재가 되지만, 늑대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채식을 시도해 봤자 어느 순간 고기를 먹는 자기 모습에 다시 회개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물론 고기를 다시 먹는 순간 이전의 양이 되려고 채식한 노력은 다 허사가 된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행위를 바로 잡으려 해도, 본성이 바뀌는 희생을 치르신 하나님 앞에는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날마다 행위를 회개한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자기 행위를 교정하려고 해도 끊임없는 회개의 굴레에 머무는 이유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께 자기 행위를 바꾸어 달라고 부르짖지만, 아들을 십자가에 보내시면서 생명이 바뀌는 근원적인 법을 보여 주신 하나님이 보실 때 어이없는, 오히려 조롱하는 기도일 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는 하나님이 원하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뉘우침 그 하나다.
온전한 회개는 내가 하나님이 원하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내가 하나님이 정한 목적 안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그 하나를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의가 육신이 된, 삶의 목적과 의미인 존재가 아니었다는 그 하나를 뉘우쳐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육신이 된 아들로 거듭나는 이 하나가 바로 회개다. 그렇게 하나님 아들로 거듭난 사람들에게 행위의 잘못은 단지 하나님 아들답지 못한 행동에 대한 반성이지, 아들이 아니었다는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하나님 아들이 아니었다는 회개 그 한번을 원하신다.
'주제별 성경 보기 > 회색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색 성경) 항상 기뻐하라 (0) | 2025.04.21 |
---|---|
(회색 성경) 성령 충만한 삶 (1) | 2025.04.08 |
(회색 성경) 성령과 거듭남의 확신 (0) | 2025.04.07 |
(회색 성경) 구원과 죄 사함과 거듭남의 확신 (1) | 2025.04.05 |
(회색 성경) 거듭남 (0) | 2025.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