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든 걸 아신다’ 그런데 …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26. 2. 26. 11:16 Writer : 김홍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명제를 수용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복권 당첨 번호를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마주할 사건의 <특정한 결과>를 미리 알고 계신다고 믿는다. 여러 선택지 중 무엇이 최종 결론이 될지, 어떤 선택이 정답인지 미리 정해졌을 뿐 아니라 사람이 결국 무엇을 선택할지 까지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는 논리다. 이 때문에 신앙인들은 늘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정답'을 알려주시기를 갈망한다.

 

성경은 수많은 구절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고 선포한다. 하나님 스스로도 당신이 그러한 존재임을 밝히신다. 따라서 이를 믿는 것은 신앙의 본질이다. 진실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실 뿐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절대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명제는 필연적인 의문을 낳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토록 타락할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셨을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것인지, 솔로몬이 변심할 것인지, 가룟 유다가 예수를 배반할 것인지를 정말 모르셨을까 하는 점이다. 이는 비신자들이 신앙의 모순이라며 공격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된다. 이에 대한 기존 신학적 대응은 전무하지 않으나, 대중을 설득하기엔 논리적 명쾌함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통상적인 신학적 관점은 하나님이 다 아시지만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경영자가 아니라, 사람의 잘못을 은혜로 감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분명 근거 있고 은혜로운 접근이다. 다만 신앙적 논리보다 상식과 철학적 논리를 중시하는 이들을 설득하기엔 다소 부족하며, 신앙인들에게조차 지적인 청량감을 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문제를 명확히 조명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핵심을 관통하는 두 가지 관점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는 것은 특정 '결과''옵션'을 미리 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선택이라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아신다. 아니 그렇게 창조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신다는 말은 사람이 어떤 선택과 결과를 도모하든, 그렇게 선택하는 이유와 그에 따른 조치 방법을 아신다는 뜻이다. , 사람의 행위가 무엇이든 그것을 다시 은혜로 이끄실 당신의 '능력'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훨씬 더 은혜로운 고백이다.

 

운전을 잘한다는 것은 기어를 바꿀 때의 기계적 수치를 아는 것이 아니라,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모든 돌발 상황에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지하심은 내 선택의 결과를 미리 맞히는 예측이 아니다. 내가 어떤 선택으로 어떤 결과를 도출하든, 그 과정과 결과를 선으로 바꾸어 나를 온전하게 하시는 '통치의 완벽함'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은 인생의 선택지 중 하나를 정답으로 미리 정해놓고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아바타처럼 조종하여 정해진 길로만 가게 하지 않으신다. 이는 성경의 매우 중요한 원리다. 하나님은 선택의 정답을 설정한 후 이를 수수께끼로 만드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한 '목적' 하나만을 정하셨고(창조), 그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모든 선택을 사람 스스로 내리게 하셨다. 하나님은 기계적인 복종이 아니라, 창조 목적을 위해 스스로 <순종>을 선택하는 인격적 존재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신앙 최대의 난제인 선악과 사건 또한 이 원리 위에서 발생했다. 사람이 왜 그토록 하나님을 배신하는지에 대한 해답도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선택의 권한을 가지고 자기 육신의 정욕을 좇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사람의 죄악이며 하나님과의 갈등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순종하여 창조 목적을 이루고 당신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를 기대하셨으며, 이를 위해 사람이 인생의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허락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마주한 일 앞에서 어떤 선택이 하나님의 정답인지를 알려달라고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도, 창조 원리도 아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무한한 선택지가 있으며, 그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선택을 내리면 된다는 사실이다. 그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행사에 순종하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창조주의 뜻(목적)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선악과 사건처럼 끊임없는 배신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의 잘못된 선택조차 하나님은 은혜로 갚으신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기준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선악의 기준을 정하고 좋은 결과를 정의하려 할 때 인생은 고달파진다.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도외시한 채 내가 주인처럼 군다면 삶은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인생이 힘든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내 앞의 선택지 중 무엇이 하나님이 염두에 둔 정답인지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내게 인생을 주신 목적을 이루기에 가장 합당하다고 판단되는 일을 두려움 없이 행하기를 기대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사람의 '중심'이다.

 

성경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와 어떤 선택 속에서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최선의 의도로 하나님을 위해 선택하고 행한다면, 비록 그 선택에 욕심이 섞여 있거나 때로 잘못된 길일지라도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어린 양을 희생하셨듯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차피 용서하시니 막 살자"는 식의 결론은 불가능하다. 거듭난 생명의 본성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시도하는 생명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앞에 놓인 선택지 중에 하나님이 정한 정답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런 가정 위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에 대해 오해했던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모습과 닮아 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이 늘 평안과 소망을 주시려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두려움을 버리고 선택하되 어떤 결과 앞에서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성경 속 인물들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아브라함이나 밧세바를 취한 다윗의 삶조차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결국 오늘 우리는 내 앞에 놓인 여러 갈래 길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이 정한 정답인지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잘 모르는 태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어떤 선택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이끄신다는 믿음이며, 그 믿음으로 담대히 전진하는 신뢰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면, 선택의 의도만큼은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신 뜻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거듭난 생명의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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