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종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들이다. 이는 목적에 관하여 말씀하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 그 창조 목적은 하나님을 표현하며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듯 누군가를 표현 하는 것, 특히나 그것이 그 본성에 관한 것이라면 그 존재를 우리는 아들이라고 한다. 아들이라는 존재는 물론 물리적으로 남자로 태어난 아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들이라는 진정한 의미는 아버지 안에 있던 본성이자 유전자가 육신이 된 존재가 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신 것이다. 즉 이 말씀은 로고스(LOGOS)다. 즉 하나님 안에 있는 말씀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가지고 계신 말씀, 곧 그 뜻이 육신으로 나타난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즉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셨다는 것은 육신을 가진 우리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같이 우리가 가진 육신으로 말씀을 표현하는 존재, 즉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육신 가운데 두셨다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이 가진 육신은 하나님의 품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창조된 존재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은 우리가 제어하고 단련시켜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가운데 거하는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들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육신을 가진 인생은 다 이 육신으로 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품성과 말씀을 육신으로 나타내었을 때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종교가 한결 같이 가르치듯이 육신을 제어하여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 육신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종은 빚을 지고 있는 존재이다. 종이 난데없이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고 있으면 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종이라는 말과, 빚이라는 말과 죄라는 말이 다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빚을 졌다는 것은 채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구매하는 모든 물건들도 그와 같은 빚이 있다. 구매한 주인이 그것을 구매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에 대하여 빚을 진 것이다.

 

형광등은 불을 밝히기 위하여 주인이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광등은 주인이 원하는 때에 언제나 빛을 밝히는 목적 아래 빚이 있다. 그와 같이 세상의 모든 만물도 그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다 빚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빚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 아래 지음을 받아 하나님을 위한 목적을 가진 모든 존재는 다 종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종이기도 하고, 또 그 목적이 바로 아들이 되는 것이기도 하기에 하나님 앞에서 아들이기도 하고, 종이기도 한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하나님께 빚을 진 종이었다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성하신 목적을 깨달으면 그 목적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한마디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아들로 살아야 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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