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탁상공론이 아니다. 삶과 생활로 나타날 때 의미가 있다. 이건 물리적 형상이 없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성품과 실존을 표현하시려고 육신을 가진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본 섭리다. 결국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에 수렴한다. 생명은 활동하고, 움직이고, 자신을 표현하는데, 이런 게 없다면 살아 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삶의 경건을 늘 소망하고, 경건하게 살기를 바란다. 다만 그 소망은 생명의 본능으로 성취되는 게 생명의 법인데, 노력하여 이루려고 하는 건 큰 문제다. 하지만 오늘은 성령, 성령께서 잉태시킨 생명은 그 생명의 본성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이야기할 것이다. 그 삶이 바로 성령께서 이끄는 삶이다. '성령이 이끄는 삶', '성령 충만한 삶'이라는 말로 이를 많이 표현한다.
우리의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 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먼저 성령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성령이 임하셔야 하고, 임하신 성령이 충만해져야 한다. 끝으로 그 성령이 내 삶을 주관하여 인도하고 이끄셔야 한다. 이 모든 시작인 성령이 어떤 분인지에 관해서는 앞서 간략히 이야기했다. (블로그의 다른 글에 성령에 대한 설명이 많이 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성령의 임재에서부터
우선 성령은 기적의 아이콘이 아니다. 성령은 들어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게 하시는 분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게 사실상 가장 크고 근본적인 기적이다. 성령이 이런 분이란 걸 알면 성경대로 산다는 게 노력이 아니라 거듭난 생명의 본성에 이끌려 사는 것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신앙인들은 성령을 초자연적 기적을 일으키시는 신비한 영으로만 생각한다. 이런 그릇된 생각으로 인해 성령 충만은 곧 기적을 행하게 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능력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겐 성령 충만과 기적을 행사하는 게 인생의 과업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능력 행하는 데 자신이 없는 사람은 성령에 관해 무관심해지거나 그냥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라는 말씀을 뇌까리기만 한다.
성령은 또한 길 가다가 줍듯이 얻거나 받는 게 아니다. 성령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므로 그 생명의 본성에 맞는 자리에 임하신다. 우리가 집이나 사무실에 사용하는 물건도 대부분이 놓은 자리, 있을 자리로 공감하는 위치가 있다. 그런데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 정체성과 맞지 않는 사람의 심령에 거하실 리는 없다. 그런즉 성령이 임하시고, 충만해지려면 성령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에게만 임재하신다.
성령의 임재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거듭남이고 구원이다. 그리고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 만나야 한다. 즉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임하시지는 않는다. 성령이 임하시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인기척이 있는 하나님을 느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스스로 존재한 게 아니면서도 존재라는 걸 인식하는 사람에게 있어 스스로는 알 수 없는 게 있는데 바로 자기 존재의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주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도 여기 있다.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 바로 우리를 창조한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건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과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조성한 목적과 의미를 깨닫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
그렇다면 '나를 찾고 찾으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네 인생의 목적을 찾으라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고자 한다. 인생의 목적, 삶의 의미를 알려는 마음이 있다는 건 사람에겐 누구나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사람은 일부러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찾지 않아도 정말로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고자 한다면 그게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렘 29:13)
이에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찾고 찾으면 만나시겠다고 많이 말씀하셨다. 인생의 목적을 찾는 것이기도 한 하나님을 찾는 간절함은 결국 존재의 하나님, 존재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사람들은 주로 인생의 문제, 가난과 질병에서의 해방이나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존재의 하나님을 찾는 게 아니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간혹 그런 것들을 찾다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람들이 있고, 버젓이 교회 강단에 서서 간증도 하는데, 단언컨대 그들이 만났다고 하는 하나님은 풍요의 신 바알과 아세라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가 찾고 만나야 하는 하나님은 존재의 신, 여호와 하나님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다. 신학적으로는 모음을 기록하지 않는 히브리어 특성으로 인해 하나님의 정확한 이름, 즉 발음을 잊어버렸다고도 하는데, 그건 사실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 이름의 뜻은 모세에게 잘 말씀해 두셨다.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더라도 그 부르는 존재의 정체성을 '스스로 있는 자'로 인식하고 있다면 존재의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게 왜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스스로 존재한다는 건 존재하는 목적과 가치와 시간과 의미와 실존을 모두 주관한다는 의미다. 다른 거 볼 거 없이 우리 사람을 보면 이게 얼마나 큰 차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존재한다는 건 인지하지만, 존재의 목적도, 깃들어 사는 육신의 탄생과 성장의 원천을 모른다. 무엇보다 그런 것 중 어느 하나도 자기가 결정할 수 없다. 즉 그것들에 관해 주권이 없다.
스스로 있다는 건, 존재의 목적과 의미와 주권이 있다는 의미
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다는 말로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선언하신다. 바로 이 하나님을 찾고 찾을 때 성경 속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그의 말씀을 듣고 심령에 되새김질하면서 심령에 둘 때 성령이 오신다. 즉 자기 존재의 목적을 존재의 신 여호와에게서 찾으려는 사람에게만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오신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삶을 원한다면 하나님께 자기 존재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없던 사업자금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생기는 기적을 일으키는 성령을 만나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셔서 인생을 주신 목적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의 성령이 오신다. 이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우리 생명이 되도록 거듭나게 하신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이렇게 거듭난 사람은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 곧 그리스도의 본성이 생명인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뜻인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생명으로 잉태시키시니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고, 그 생명의 본질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본성이 또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인 사람이다. 그의 모든 삶은 항상, 쉬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다. 그리고 그 행함은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나타내시려고 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정체성과 마음과 뜻이다. 한 마디로 성경대로 사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삶의 모든 순간은 성경대로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은 그 삶 자체가 성경대로 사는 삶이다. 이 블로그의 주제인 Bible become My Story도 이런 의미다. 이런 삶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고, 이 삶이 장성하여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며, 그 장성함이 곧 성령의 충만이다. 즉 육신이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삶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이다.
아마도 대부분은 '그냥 살 뿐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게 된다고?'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답한다면 그런 삶이 아니라면 거듭난 삶이 아니다. 거듭난다는 건 생명에 관한 이야기고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의 삶 모든 순간은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사는 게 당연하나 것이다. 개가 어느 순간만 고양이일 수 없다는 걸 동의한다면, 거듭난 사람은 항상 그리스도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개가 잠깐씩 고양이일 수 없듯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이라면 한순간도 예외 없이 그리스도여야 한다.
다만 자기가 그런 삶인지는 다른 이야기인데, 그것이 아니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만 양심이 화인 맞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하는 게 곧 자기 죄를 시인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그 인정이 구원을 이룬다. 당연히,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하나님이 정한 목적대로 살 수밖에 없는 생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자리를 떠난 것이고, 그것이 죄다. 그걸 시인해야 구원이 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삶은 구원받은 삶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 아니라 구원 자체다.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가 자기 안에 없다면 그건 구원받지 못한 삶이다. 사람으로 난 사람은 숨 쉬는 동안 항상 사람이듯이, 구원이 거듭남이라고 믿는다면 한순간의 예외도 없이 항상 성령이 함께하는 삶,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사는 삶이어야 한다. 이 생명이 없으면 행함 없는 믿음, 곧 죽은 믿음이다. 이건 신앙이 아니라 상식이다. 즉 항상, 어느 순간도 예외 없이 성경대로 살고 있어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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