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사도는 빌립보서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기뻐한다는 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교회들은 성경에서 ‘기뻐하라’고 하셨으니 기쁘지 않을 때도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건 참 좋은 말 같지만 그것이 바로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마음이 표현된 하나의 현상이기도 합니다. 하여간 사람은 억지로 기뻐하는 것이 어려운 존재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바울사도가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계속 기뻐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동안 일관되게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전한 사람입니다. 그런 바울사도가 마음에 기쁘지 않을 때도 억지로 기뻐하라고 했다는 식으로 이 성경을 보면 그것은 왜곡입니다. 자기 맘대로 말씀을 변형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되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한 사도라는 것을 인정하고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적어도 바울사도가 사람 마음에 없는데 억지로 기뻐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볼 수 있어야 성경을 보는 기본이 된 사람입니다. 복을 받을 목적으로, 죽어서 천국에 가서 상을 받을 목적을 마음에 두고서 기쁠만한 것이 없을 때도 기뻐하는 것과 같은 것은 기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바울사도가 기뻐하라고 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억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뻐할만한 이유가 있는 존재(사람)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기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기뻐한다면 그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고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뻐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인생이 태어나지 않은 것 보다는 감사하고 기쁜 일인 사람이 되어야 기뻐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사도의 형편을 봐도 기뻐하기는 어색한 면이 큽니다. 옥에 갇혀서 뭐가 기쁘다고 기뻐하고 있으며,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빌립보의 성도들의 입장에서 봐도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도가 옥에 갇혀 있고 간병하러 간 사람마저 병으로 쇠약해진 상황인데 서로가 기쁨을 이야기할 처지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의 교인들은 바울사도의 기쁨이고, 바울사도는 빌립보의 성도들을 향해서 기뻐하라고 권면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기쁨과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쁨은 육신의 어떤 문제가 세상의 가치고 볼 때 잘 되었을 때 기쁩니다.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거나, 회사의 신제품이 대박을 쳤다거나, 큰 병이 나았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기쁨을 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런 것을 구합니다. 반대로 억지로라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사람들의 신앙은 육신의 어떤 불편이 있어 화가 나거나, 바라는 것이 되지 않아 낙심했을 때는 기쁘지 않은 순간이지만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육신의 어떠함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존재가 되었음을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글레멘드라는 사람을 언급하면서 그 사람의 동역자들이 생명책에 이름이 있다고 했는데, 앞서 바울사도는 빌립보의 성도들이 자신의 기쁨이고 면류관이라고 하였는데 바로 글레멘드와 같은 빌립보의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사람에게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다는 것은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한 것으로 볼 때 그런 마음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딴 마음이라고 하니 횡령을 했거나 싸움질을 한 것이라기보다 존재가 기쁨이 아닌 모습이었지 않나 생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이라는 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올라가려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시는 존재이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존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을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이며, 사람의 육신의 일에 관하여 선과 악으로 판단치 않는 사람이기에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갈등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바울사도가 말하는 기쁨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쁨은 우리 육신의 어떤 문제나 형편이 세상적인 가치 기준에서 기뻐할 수준이나 상황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기쁘지 않을 때 기뻐하라고 하는 교회의 말들은 육신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 기뻐하면 육신의 상황이 좋아진다는 유혹일 뿐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자신이 존재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으로 살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하나님이라는 위대한 신의 뜻이 자기 생명이 되는 사건을 보지 못했음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4: 1-7) Rejoice with true joy
The Apostle Paul exhorted us to continue to rejoice through Philippians. In fact, rejoicing is not a compulsion. Nevertheless, many churches still say that they should "rejoice" in the Bible and be glad when they are not happy. It seems like a good word, but it is also a phenomenon that expresses the desire to be justified by the act. It is clear that people are hardly forced to rejoice.
Nevertheless, the apostle Paul tells him to continue to rejoice in the saints of Philippi, whom he loves so much. The apostle Paul proclaimed that while he preached the gospel he was not consistently justified. It is a distortion when you see this Bible saying that Paul apostles were forced to rejoice even when they were not happy with their hearts. It is transforming the Word as you wish. That is to be God.
Paul is the apostle who tells the apostle that he is not being made righteous, and that if he believes in God, at least he can see that the Apostle is not in the person's mind but that he should not be forced to rejoice. For the purpose of blessing, it is not the purpose to rejoice when there is nothing to be glad in the heart of the purpose of going to heaven and going to heaven.
The Apostle Paul said to be glad does not mean to force you, but to be a person who has reason to rejoice. If you are not pleased with being able to rejoice, if you rejoice, it is forcible and you want to be justified by the act. Being a joyful person means having joy in your being. At least, this life can not be said to be a person who is delighted to be thankful and joyful rather than unborn.
It is awkward to be glad to see the Apostle Paul, who records Philippians. I am delighted that I am glad of being jailed and I am glad that I am glad, and when I see the Saints of Philippians who love and love themselves, the apostles they love are locked in jail, and the man who went to care has been weakened by sickness. It is difficult to say that you are in trouble. Nevertheless, we can see that the Philippians are members of the Apostle Paul, and that the Apostle Paul exhorted to rejoice in the saints of Philippi is something different from the joy we usually know.
The joy of people is glad when the problem of the flesh is good for the world. I am pleased that I have passed a difficult test, my company's new product has hit a jackpot, or I've had a serious illness. So I ask God for that. On the other hand, the religion of those who say that God blesses them is to bless them when they are not satisfied, but when they are discouraged because they are not angry or desirous. Everything is focused on what the body is all about.
But the Apostle Paul tells us to rejoice that he has become a name in the book of life. The apostle Paul mentioned the person named Geralddin, and said that his co-workers had a name in the book of life, but earlier Paul said that the saints of Philippi were their joys and crown because they were speaking of the saints of Philippi, is.
I do not know much about the fact that you are encouraged to have a heart for a person named Euodia and Sunduge, but it seems that you were out of mind when you were asked to have the same heart as the name of a person in the book of life . In other words, it is a different mind, that it is not joy, but rather that it is not joy or brawling.
However, in fact, the conflict that exists among all people is due to the lack of a name in the book of life. To be named in the book of God's life, God must be a living being, and such being is a person who knows God's purposes for the purpose of man's creation, and who is delighted by the purpose God has made for himself , Because he is a man who does not judge us by good and evil concerning the work of the flesh of man, but because of the joy of Paul's apostle, as well as the distinction we have in common.
The joy that the Bible says is not because it is a level or situation in which any problem or circumstance in our flesh will rejoice in worldly standards of value. The words of the Church, which tells you to rejoice when you are not glad, is that it is not only the temptation to improve the physical situation, but the pleasure of the Bible as you rejoice when the physical situation is bad.
True joy is in a person who is so thankful and happy that he exists. If we do not have the opportunity to live in the flesh, we have no choice but to see that God's great will of God is not his life. To rejoice in the Bible is to be such a person.
'평교인의 성경 보기 > 빌립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립보서 4:1-7) 염려하지 말라 (0) | 2017.09.03 |
---|---|
(빌립보서 4:1-7) 관용을 베푸는 존재 (0) | 2017.09.01 |
(빌립보서 4:1-3) 사람이 기쁨과 면류관이 되는 신앙 (0) | 2017.08.30 |
(빌립보서 3:17-4:1) 나는 변화된 사람인가? (0) | 2017.08.29 |
(빌립보서 3:17-21) 변화 (0) | 2017.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