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예정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가지신 뜻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한 것”(엡 1:4)이라고 말씀한 것에서부터 에베소서 1장의 말씀들에서 더 확정이 됩니다. 물론 이 확정은 하나님을 존재의 신으로서 온전한 유일신으로 섬길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시는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것이라는 분명한 선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정체성이 하나의 ‘의’며 그 ‘의’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예정하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예정은 a man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the Christ라는 정체성을 예정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가진 사람은 그 안에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는 것은 교회라는 공간적 울타리에 있다거나 아니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아니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같은 생명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집에 있는 사과나 마트에 진열된 사과나 모두 사과 안에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보이시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순종할지 말지에 대하여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선악과를 아예 먹지 못하게 만드시지 않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에는 죽은 자였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가 된다는 것도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자기 안에 없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죽은 자지만 성경 말씀을 듣고 사고할 수 있는 육신은 살아 있는 상태인 것은 오직 그 육신의 기능으로 하나님의 의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두신 것입니다.
이는 금은방에 있는 시계가 멈춰 있지만 주인에 의하여 선택이 되어 시각을 맞추면 그 때부터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가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인이 정해지기 전에는 시계로서 온전하나 아직 존재의 목적으로 볼 때는 죽은 것이다가 주인이 정해지면서 그 목적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바로 목적 안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의 육신이 살아서 기능을 발휘하는 그 기간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이신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자기 운명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주신 삶의 기간일 뿐인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 곧 인생의 목적을 자기의 것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 예정하신 뜻을 보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그 말씀을 듣고서 그가 보이신 것이 육신의 평안이 아니라 육신을 드리고 사용하고 소비하여 영이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목적임을 알고 살아가는 삶이 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성경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다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인생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지으신 분이시기에 인생의 온전한 의미를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사랑도 서로에게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행위라도 의미 있는 이들 사이에선 사랑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추행이나 범죄가 되기도 하는 것이 그 때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에게 그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야말로 유일한 사랑의 의미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사랑 안에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드시고 또 그 의미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그 의가 육신이 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와 같이 육신을 가진 모든 이들이 그것을 보고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게 하신 것이 하나님 사랑의 뿌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 안에서 예정되었다고 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으로 예정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거룩함이라고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니 목적대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종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생명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바로 이것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거룩함이라는 것은 먼지도 묻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구분되는 것입니다. 흠이 없다는 것도 형식이나 육신의 삶의 행위가 어떠함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정체성이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것에 흠이 없는 존재인지 아닌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그 목적 안에 있어 하나님께서 생명이 있는 자로 보는 사람이 거룩한 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 곧 우리를 지으신 그 목적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 예정하심 안에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가 존재의 목적을 알게 된 것이므로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이며, 그 사랑 안에, 또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구분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나타내시려고 지은 그 목적을 자기 삶의 목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예정된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우리 인생들은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고 살게 되는 영광과 감사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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