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시고


성경을 보는 안목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관점과 안목과 가치관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사형수로 죄인의 사형 틀에 매달아 죽게 하시면서 그것을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에서 죄인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을 기도하여 바라고, 그것을 영광이라며 영광을 돌리는 가치관으로 가지고 있고, 그 가치관으로 성경을 봅니다. 하나님과 다른 가치관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비단 성경 뿐 아니라 어떤 책이나 글이나 말이라도 저자의 강사의 의도대로 볼 때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을 십자가에 드리는, 즉 세상의 가치로 볼 때 죄인이 되는 가치관으로 죄인 되고 종 되며 소비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시는데 사람들은 그 반대로 큰 교회를 건축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면 하나님께 영광이라 여깁니다. 이것은 완전히 반대의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두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신다고 하는 말씀을 보는 것도 어떤 관점으로, 누구의 안목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가 먼저 선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신다.’고 하신 말씀이나 ‘모든 이름 위에’와 같은 표현들을 두고서 세상의 경쟁에서 이긴 것을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시험이나 경쟁에서 이기게 하신다는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에서 ‘이김’은 분명히 세상의 심판 기준으로 이긴 것인데도 단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결과를 얻었다는 생각에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참 모순인데도 그 생각이 이상하다고 의심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의 이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경쟁하는 사람들 위에 서고자 하는 마음이 그들 안에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가치기준으로 보면 가장 실패한 인생입니다. 세상의 법으로 사형을 당하는 것 보다 세상 기준에서 실패한 인생은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두고 하나님께서 세상의 권세를 이겼다고 하시고, 세상의 모든 정사와 권세자 위에 계신다고 하시며 만물을 복종하게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을 복종하게 하는 법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에서 바울 사도가 말씀하시는 이 만물을 복종하게 하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세상의 시험이나 권력과 같은 것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어서 이기고자 하는 그 세상의 일과 힘 앞에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즉 에베소서의 이 말씀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이때까지 예수를 믿어온 것에 대하여 전면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의 가치 기준과 동일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다는 것은 위대하고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권세를 얻어 세상의 모든 권세를 힘으로 굴복시켰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자신의 것으로 스스로 순종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이제 그들이 그것 앞에 순종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제적인 것이나 강압적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순종하려고만 하면 세상에 그 보다 더한 복종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면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능력은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어 그 본성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본성은 세상의 어떤 힘으로도 바꾸거나 강제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를 아무리 고문하고 조작하여 해도 개처럼 짖게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종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모두가 추구하는 것의 꼭대기로 가서 힘이나 능력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생명의 본성과 같이 온전하며 완전하게 나타나는 것이고,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육신 가진 삶을 살면서 육신을 종과 같이 소비하여 하나님의 의와 성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렇게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신 예수님과 같이 우리가 육신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때 그것을 본 모든 만물들이 스스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고 순종하므로 그 순종함이 자기 안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생명이 되어 그 본성으로 살게 되는 복종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만물을 복종하게 하신다는 것의 본질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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