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는 눈에 보이는 세상과 그 보이는 것을 나타나게 한 본질에 대한 명확한 구분 설명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설명은 히브리서 기자의 집착 같은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내용과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TV가 본질이 아니고 방송되는 컨텐츠가 본질이고, 책에 인쇄된 문자가 본질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철학이 본질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가 사랑의 본질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인하여 생긴 삶의 의미가 본질인 것이 그렇다.
제사와 율법도 명확하게 나타난 세상과 같이 형식이다. 그것이 본질이 아니다. 이것에 대하여 성경은 손으로 지은 것, 외식과 같은 것으로 표현한다. 히브리서에서 제사와 관련해서는 레위의 계통이 집례하는 제사를 또 그것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구분이 명확하게 이해되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학문적 소양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행간을 볼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 있다면 수용적으로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자기 생각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의도하는 대로 성경을 보는 것이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모세의 율법에 의한 성전은 모형이고 하늘에 있는 참 것의 그림자라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성전이 그러하다면 지금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은 모형이다. 모형은 본질을 기준으로 정결하지 않으므로 이것을 늘 정결하게 하는 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모든 제사의 유일한 본질인 삶을 드리는 생명이 되는 법을 대표하여 피 흘림이 있고, 모든 모형에 그 의미로 흘린 피를 뿌려서 정결케 한 것이다. 그것이 모세의 제사고 레위 계통의 제사다. 오늘날 주보에 적힌 예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율법과 레위 계통의 제사가 모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이 말씀의 행간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두들 본질로 여기는 것을 모형이고 형식이라고 설명했다는 것은 무엇이 본질인지를 알기 원함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모든 것의 본질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 원하기에 이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본질로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을 모형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시대라도 히브리서를 대하는 모든 사람은 이 의도에 맞게 히브리서를 대하고 자신이 무엇을 본질로 여기면서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성소는 참 것의 그림자라고 했다. 참 것은 제사의 본질이다. 제사는 신께 헌신하는 것이다. 육체를 불살라 드리는 것은 의미 없다. 목적이 있어 주신 육체를 불사르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제사의 본질은 결국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대로 사용하시는 것에 나를 드리는 것이다.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의 육신을 통해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찔리시니 하나님 아들임이 드러난 것처럼. 아들이 드러났다면 당연히 아버지의 존재와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이유다.
그러나 이 본질은 외면하고 그 본질의 그림자,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모형과 그림자를 좇으면 한 번에 되지 않는다. 아니 영원히 되지 않을 수 있다. 본질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아들이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 아들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만 하는 종들은 아무리 많이 나와도 소용없다. 레위 계통의 제사가 종류가 많고, 그 횟수가 끊이지 않는 것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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