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 정확히는 또 한 사람의 그리스도가 되는 과정이라는 것은 이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라(요 5:39) 라고 하셨다.


즉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성경이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십일조를 어떻게 드리는지, 아니면 물리적인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외면하고 성경을 문자적으로 지키고 해석하려고만 한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다.


정히 그렇게 성경을 형식적인 관점에서 보고 싶다면 모든 면에서 그리 봐야 하겠지만 그 또한 그렇지 않다. 20대 후반에 전도사였던 친구와 대화 속에서 십일조를 내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해석하면서, 부모를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것은 의미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에 대하여, 그것을 나누는 기준이 뭐냐?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대답? 없었다.


이런 문제는 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외면한 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정체성이라는 존재 규범에 대한 말씀을 어덯게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는 존재 규범으로 보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간첩이 봉사활 동 하는 것과 같다. 존재가 바르지 않으면 좋은 일을 하면 할수록 죄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스도란 무엇이며, 이 그리스도가 무엇임을 사람에게 보여 주고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첫 그리스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주려한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성경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말씀하시고자 간절하신가? 그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고 사람의 존재 목적


결론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면서 살도록 지으셨고, 그 목적하신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인지 사람에게 알게 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게 성경이다. 


그렇다면 이 천지창조는 또 뭐겠는가? 이것이 과연 물리적 세상의 창조과정이겠는가? 그건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의 과정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과정이다. 그리스도란 어떤 것을 귀하게 여기는지, 무엇을 의롭게 여기는지, 무엇을 선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육신으로 숨 쉬고, 물을 마시고, 음식물을 먹듯이,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은 무엇을 먹고, 어떤 호흡을 하며 어떤 것을 양식으로 삼게 되는지에 대한 과정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창세기의 천지창조인 것이다. 천지창조는 그리스도 정체성에 대한 대 원리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의 후반부인 넷째 날, 다섯째 날 그리고 여섯째 날에는 사람이 무엇을 먹을 것이며, 사람이 영적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지창조 과정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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