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에 뿌려진 씨
씨 뿌리는 비유 속에서 가시밭에 뿌려진 씨에 대해 예수님은 세상의 근심과 염려를 이기지 못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는 생명이 되지 못한 예라고 설명하신다. 이런 사례는 쉽게 이해가 될 순 있지만 생각보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예수님의 비유 속 가시밭에 해당하는 신앙이 되려면 우선 씨가 심기고 싹은 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가는 사람은 사람의 예상과 달리 아주 적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비유 속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속한 땅은 ’길가‘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에 제대로 심기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가장 많다. 아니 대부분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육신의 삶의 성공과 평안을 바라고, 자칭 기독교인 혹은 구원받았다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같은 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즉 성공과 평안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신앙은 씨가 뿌려진 길가에 속하는 사람이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신앙인 대부분은 돌밭이나 가시밭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 속 돌밭과 가시밭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다. 당연히 좋은 밭은 어림도 없다. 다른 건 볼 것 없다. 기도할 때마다 회개한다는 건 아직 죄인이란 고백이다. 죄인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그리스도일 순 없다. 이것 하나면 오늘날 신앙인들의 정체성을 증명한다.
하지만 사람은 가시밭을 넘어 좋은 밭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걸 목적으로 사람에게 육신 가진 인생을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그 목적 아래 있다. 씨 뿌리는 비유도 당연히 그 안에 있다.
사람이 생명의 말씀을 만나서 기쁨으로 순종하고 살아도 육신은 변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자신은 예수 믿는 사람이므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과 다른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예수 믿는다는 게 삶의 형편이나 육신의 능력을 바꿀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기도하는 것보다 공부하는 게 더 좋은 성적을 보장한다.
문제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 이전에 알지 못한 그리스도의 본성과 생명을 알고 자신이 그 삶에 빨려들고 있다는 걸 알아도 변하지 않는 육신의 형편을 그대로 순종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근심거리, 걱정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난다고 없어지진 않는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냥 피와 물을 흘리고 숨을 거두신 게 이 이치를 설명한다.
복음서 후반에 나오는 향유 옥합 사건 때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리스도라는 생명이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는 걸 분명히 하심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교회에 가서 육신의 어려운 일을 기도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은 그 문제들은 창조하시고 경영하신 세상의 이치에 맡기신다. 열심히 일하는 게 문제를 더 잘 해결한단 의미다.
사람들이 바로 이 이치를 몰라서 세상의 일이 가시가 된다. 생명 있는 온전한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되면 그 귀함과 그 능력에 놀라고 감탄한다. 그래서 그 놀라움이 세상의 모든 걸 이길 거란 기대로 가득하게 된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것이라고 기대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육신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모두 아시며, 아시기에 우리에게 육신을 주실 때 이미 그 문제에 대한 해답도 함께 다 주셨다.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란 말씀이 그것이고, 염려하므로 키를 자라게 할 수 없단 말씀이 그것이며, 가난한 자는 항상 있단 말씀이 그것이다. 이것을 아는 데서부터 세상의 염려를 이길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다 주신 걸 되레 문제 삼는 데서부터 가시가 자란다.
사실 이 세계는 신앙에 있어 제법 단수가 있는 세계일 수도 있다. 너무나 귀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나서 보니 그 귀함은 낮아지므로 얻는 것이고, 그 능력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바꾸는 것임을 아는 세계다. 이게 말로는 쉽지만, 생명이 많이 자라야 여기에 이른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성경이 욥기다.
그리스도의 능력과 생명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세상과 자신과 하나님을 보는 안목이 바꾸는 능력이고 생명이다. 세상의 일은 염려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본성이 드러나도록 하시는 경영이다. 이 비밀을 알아야 그리스도의 생명이 장성한 데 이른다. 이건 아주 놀라운 세계다. 당연히 그만큼 힘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신앙이 여기까지 이르면 바울 사도의 말씀대로 세상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다. 한 마디로 좋은 땅이 된다.
'평교인의 성경 보기 > 마가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 4:21-23) 등불은 등경 위에 (0) | 2022.06.13 |
---|---|
(마가복음 4:1-20) 씨 뿌리는 비유 (4) (0) | 2022.06.09 |
(마가복음 4:1-20) 씨 뿌리는 비유 (2) (0) | 2022.05.27 |
(마가복음 4:1-20) 씨 뿌리는 비유 (1) (0) | 2022.05.21 |
(마가복음 4:1-20)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 (0) | 2022.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