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악과를 논하는 건 <죄> 때문이다. 우리가 앞서 선악과를 이야기한 이유도 결국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죄'라는 게 무엇이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는 건 모두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임에도 구원받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면서 정작 기도할 때마다 회개로 시작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은 분명 심각한 모순이다. 물론 이런저런 변명 같은 말들은 있다. 이제 그런 이야기들을 하려 한다.
선악과를 먹었다는 건 사람이 스스로 선악의 기준을 가지는 것인데, 사람이 자기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한 결과는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만족하지 않은 사람에게 삶은 행복하지도 않고, 괴로움 그 자체다. 죄지은 사람의 불안, 불편도 이렇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가 이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죄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다. 우선 죄의 어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죄를 의미하는 원어의 우리 발음은 '하마티어'로 '자리를 벗어나다'라는 의미다. 자리를 벗어난 상태라는 의미로 여기서 말하는 '자리'는 좌표나 위치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리는 정체성으로 어른들 말씀으로 보면 본분을 벗어난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조폭끼리 아무리 의리가 좋고, 서로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해도, 숭고해 보이는 그들의 행동은 모두 죄다. 심지어 그럴수록 죄가 커진다. 조폭이라는 정체성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가져서는 안 되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자주 예로 드는 간첩도 그렇다. 신분, 곧 정체성이 간첩인 이상 다른 사람이 하면 칭찬받을 선한 어떤 행위도 하면 할수록 죄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셨는데 여기서 말씀하시는 '어디'가 바로 정체성이다. 하나님의 물음은 숨바꼭질에서 친구를 찾지 못한 술래의 외침 같은 게 아니다. 이미 하나님은 아담과 대화할 수 있는 상태로 장소를 묻는 게 아니라 <정체성>을 묻는 것이다. 또 선악과로 인한 죄가 불순종이라면, "아담아,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라고 물으셔야 맞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라고 물으신 게 아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가져야 하는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담은 하나님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피조물이므로 어떤 경우에도 창조 목적을 벗어나면 안 된다. 이건 우리가 사거나 만든 핸드폰이나 노트북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의도한 통신이나 업무 SW 작동이라는 목적을 벗어나면 존재 자체가 짐, 곧 죄가 된다.
성경이 말하는 죄는 행동이 아니라 정체성, 창조 목적 안에 있는지 여부
사람은 하나님의 의와 뜻을 표현할 존재다. 자기가 옳다는 걸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자기가 선악의 기준으로 가지고 인생을 엮어 간다는 건 자기 의로움, 자기 목적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건 피조물의 자세도, 사람의 자리도 아니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죄의 상태, 정체성이 죄인 상태다.
그렇게 자리를 벗어난 사람은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목적 안에 들어오기 전에 자기 생각이나 사회, 국가적 생각에 옳다고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죄다. 반대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삶의 목적, 삶의 의미, 삶의 본성이 된 사람은 어떤 것도 죄가 되지 않는다. 이게 가능한가 싶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바로 이걸 믿는 것이다.
우리가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일반적으로 사람이 죄를 판단하는 대상인 행동이 정체성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사람인 적군을 향해 총을 쏘는 게 나라는 지키는 군인으로서 한 일이라면 충성이 되지만, 군인도 경찰도 아니고 상대가 선량한 사람인데 총을 쏘면 범죄가 되는 걸 생각하면 된다. 총을 쏘는 행위가 쟁점이 아니라 누가 총을 쏘느냐가 쟁점이다.
성경은 죄를 이 관점에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사람이냐 아니냐가 심판의 기준이다.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한 판결마저 가른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의로운 행위지만, 가인이 아벨을 죽인 건 큰 범죄가 된다. 생명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만큼 이건 너무 쉽고 분명하고 확실한 기준이다. 이 하나를 믿는 게 하나님을 믿고, 거듭남을 믿고, 죄가 사해진다는 걸 믿는 믿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면 거듭나기만 하면 도둑질해도 되느냐?"라고 반문한다. 우선 분명하게 말하는데, 이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라는 생명을 도둑질도 하는 생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반문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도 도둑질하는 본성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가정에서 하는 질문이다. 이건 논쟁의 가치조차 없는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이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게 사망의 권세에 잡혀 있는 증거다.
죄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 정체성의 문제다. 형식적으로는 행위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건 맞다. 그러나 행위는 존재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행여 행위가 선해도 존재 정체성과 다르면 거짓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 안에 (사도 바울이 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의 행동은 설령 선한 행동이어도 거짓되고 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라고 묻지 않는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는 존재냐?"를 물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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