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주제는 바로 <자유의지>다. 자유의지라는 말이 성경에 선명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구글에서 검색해도 명확한 성경 구절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측면이나 아담이 자기 선택으로 선악과를 먹은 걸 보면 사람에겐 분명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할 의지가 주어진 게 분명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믿음을 투영하면 그 자유의지는 하나님이 주신 게 된다.
자유의지는 사실 앞서 선악과를 이야기할 때 거의 설명했다. 절대로 먹지 말라고 경고하셨지만,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에 근접도 못 하게 하거나, 먹지 못하도록 하는 어떤 보안 조치도 하지 않으셨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뱀이 꼬셨다고는 하나 결국은 자기들의 의지로 선악과를 먹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의 의지로 선악과를 먹었다.
그 의지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에 대한 강력한 경호를 하지 않았는지도 의문이고, 무엇보다 아담과 하와 즉 모든 사람에게 심지어 흉악한 범죄마저 범할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는지가 더 큰 의문이다. 능력이 없는 분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이런 의문은 하나님의 방조 혹은 무능을 의심하게도 한다.
여기서부터는 선악과와 내용이 겹친다. 그리고 역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핵심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 표현하기를 원하심이다. 그것도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성품 표현하기를 바라신다. 아바타나 아무 생각도 없이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고 표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옳다는 걸 인정하고 믿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원하신다.
이것이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렇게도 순종을 원하신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은 분명 사람이 순종할 수밖에 없도록 사람을 강제할 능력이 있는 분인데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건 그게 하나님의 법과 계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기를 잡으러 온 병사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베드로에게 하늘의 군사를 불러 충분히 물리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이 뜻이 충분히 녹아있다.
어떻게 명명하든 사람은 분명히 자유로운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인권이나 무한한 자유 권한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로운 의사 결정 권한을 주신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는 회사가 경영진과 간부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지만 그 모든 권한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과 같다.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건 오직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자기 결정으로 순종하길 원하심이다.
사람들이 신학적 관점에서 자유의지를 논쟁하고, 선악과를 두고 왜 만들었는지, 아담이 먹을 걸 몰랐던 건 아닌지 등을 논쟁하는 이유는 자기 인생의 목적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내뱉는 어리석은 소리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음을 알고, 그 목적이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여 하나님의 형상, 곧 성품 표현이라는 목적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면 모든 건 선명해진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롭게 결정할 의지를 주신 이유는 우리 육신의 수명이 기회라는 것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고 더 나아가 흔히들 성선설, 성악설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어떤 존재로 태어나는지에 관한 의문도 해결한다. 이걸 구원의 시점이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이야기를 다음에 이어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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