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이스라엘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브라함의 여정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려는 사람의 심령이 변하는 여정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사람의 심령이 세상에 속했다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을 낳을 수 있는 삶에 이르는 여정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았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 사람의 처한 환경이나 사고방식, 그리고 각 개인의 성향에 따라 각 과정을 거치는 시간(크로노스적인 시간)의 차이나 과정을 겪는 심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여정을 겪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점점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 여정은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먼저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 세상에 대하여 인식한다. 태어나면서, 철이 들면서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태신앙이라도 다를 바 없다. 모태신앙이라고, 하나님을 믿는 집에서 태어났다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 알게 된 하나님의 인식을 바로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도구요 수단이요 형식인 사람의 육신을 가진 삶이 세상 안에 보내지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신앙의 여정을 세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세상에 속했다는 것은, 아니 어디에 속했다는 것이나, 성경에 많이 나오는 것과 같이 어디 아래에 있다거나 어디 안에 있다는 것은 그것의 법을 따른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속했다면 세상의 법을 따른다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속했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의 법을 따르는 생명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에 속한 상태로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법대로 사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창세기에서는 흑암이 혼돈하고 빛이 없고 어두운 상태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으니 사람은 하나님의 법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창세기의 천지창조 과정 역시 사람이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안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존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그렇다. 그 고향 땅은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 즉 위대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땅이다. 즉 아브라함 역시 세상의 가치관에 속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정체성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리인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의 자리로 떠나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그 뜻 안으로 들어가려는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성경을 이렇게 보지 않으면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그냥 이스라엘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 세상의 가치관에서 떠났다고 바로 하나님의 정한 자리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떠나라 했으면 단숨에 인도하실 것이지 뭐 그렇게 복잡하고 이래라 저래라는 것이 많으냐는 식의 태클은 다분히 사람의 생각이다. 사람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편하고자 하는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여정은 여러 과정을 거쳐 간다. 아브라함이 롯과 함께 다니다가 애굽을 사모하는 롯과의 갈등이 있었듯이 세상의 가치관을 떠나서 하나님을 믿는 자리로 가기 시작해도 세상의 것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필자도 처음 이 복음, 하나님께서 존재의 신이라는 안목이 열리고서 마음에 ‘그래도 돈이 있으면 더 복음을 누리는 삶이 더 좋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을 떨치는데 정말로 적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그 시절을 한 마디로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위로함이여 만족이 되라!”라고 했다. 복음을 아는 것이 힘든 삶의 위로가 되기는 하지만 만족이 되지 않았는데 만족이 되기를 소망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정들을 거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은 것과 같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아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을 알고자 하는 사람, 그것을 자신의 신앙으로 삼으려 하고,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더 알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에 때에 이르러 야곱에게서 12아들이 나오고 12지파가 되어 나라가 된 것 같이. 그것이 바로 신앙의 여정이다. 그것을 아브라함의 여정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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