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을 지키는 것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6. 5. 4. 15:27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은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을 가지고 산다. 하지 말아야 하는 근거는 다양하다. 사회적인 것도 있고 법률적인 것도 있으며 자기가 속한 조직이나 공동체의 규율도 있고 스포츠 세계에선 암묵적인 불문율도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것도 있다. 아마도 종교적인 것이 차지하는 범위는 넓을 것이다. 법률은 물론 사회적인 것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많은 종교인들(이 블로그의 성격상 기독교로 한정할 수 있음)이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지키려 노력한다. 주일날 일하는 것, 욕하지 않는 것, 거짓말 하지 않는 것 등등 십계명이나 또 성경 말씀들을 그리고 교회가 요구하는 것들 그리고 스스로 지키려고 하는 것들을 지키려 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문제는 그게 녹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십일조, 정확한 십일조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은 어이 없이 어렵다.(십일조를 왜 하는지? 목적은 제외하고 단순히 하는 행동으로만 볼 때도) 세전 수익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세후 수익으로 할 것인지, 그리고 때로 무임승차를 제공 받거나 누군가에게 대접받은 커피 한잔 한 끼의 밥과 같은 것은 또 수익으로 봐야 하는지, 수익으로 본다면 그것을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고 정산해서 십일조를 할 수 있을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내지 않는 것은 또 어떤가? 해가 질 때 까지 화를 품지 말라고 하신 성경을 다 지키면서 살 수 있을까? 단 5분의 운전이면 화를 내는 것은 마치 맡겨 놓은 것을 찾은 것 같이 나의 일이 되는 것을 어떻게 다 이겨낼 수 있을까? 아마 행동으로 화내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지켜낸 사람도 없고, 어떤 각오를 해도 앞으로 남은 삶 동안 다 지켜낼 사람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여기에 괴리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는데 사람의 성능도 모르시는 것인가? 할 수 없는 것을 사람은 다 아는데 왜 요구하시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 할 수 없다고 여기고 더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려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뭔가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한다. 살 동안 조금이라도 더, 한 가지라도 더 지켜내려고.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지켜내는 삶은 단 한번만 지켜내지 못해도 다 도루묵이 된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교회는 말한다. 성경을 인용해서 이렇게. “깨어 있으라.”고.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매진한다. 다시 실수하기 전 그 짧은 순간에 죽거나 주님이 오시는 행운을 바라면서 평생을 그렇게.


하지만 단언컨대 그 방법으로 구원이나 선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위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구원 받을 수 없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3:23)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난폭 운전을 생각해보자. 운전하는 그 많은 순간들 중에서 같은 도로에서 자기 옆에 함께 달리는 차보다 내가 먼저 가야할 이유가 얼마나 있을까? 어쩌면 살다보면 정말로 그렇게 해야만 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교통 위반으로 인한 딱지나 심지어 위험마저 감수하면서 그래야 하는 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그렇지 않다.


만약 사람 안에 운전을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빨리 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어쨌든 이유가 있다. 자기 운전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서나, 아니면 남이 자신을 화나게 했거나 차의 성능을 만끽하고 싶거나 그것이 취미거나 등등. 하지만 자기 옆에 가는 차 보다 더 빨리 가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운전하는 마음의 핵심이라면 그냥 갈 것이다. 그러면 교통법규를 그냥 지킬 것이다.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어길 이유가 없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말씀을 지켜내는 것도 이것이다. 갖은 말씀과 계명을 하나씩 행동으로 지켜내려고 하는 의지와 신념보다는 자기 안에 그것을 지켜내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이유 그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 하나가 바로 생명이다. 말을 해야 사람이다.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 사람이다. 생각을 해야 사람이다. 직립 보행을 해야 사람이라고 하는 그 많은 조건들을 지켜내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다. 단 하나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으로 태어난 그 하나만 있으면 사람이 되는 그 어떤 조건도 만족하고, 사람이 행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도 그냥 다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로서 살아가는 것,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 성경을 지키는 것 그 어느 하나도 예외 없이 단 하나의 이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남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생명으로 인하여 성경의 모든 말씀을 어기려고 해도 어길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생명의 법이고 거듭남의 비밀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말로서 예수님이 주님임을 고백하면 구원을 받고, 그렇게 구원을 받았다면 성경을 지켜 행하여야 한다는 식의 구조를 가진 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와 말씀이 사람 안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의 생명으로 잉태되고 거듭나면 성경의 모든 말씀을 지킬 수밖에 없는 생명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성경의 말씀이다.


더욱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그리스도의 생명,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을 살도록 지음을 받았으니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 생명의 법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그 삶은 신념으로 말씀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심령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생명이 잉태되고 거듭나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법이다. 그 생명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신앙은 노력이나 신념으로 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러고 있다면 자기 안에 생명이 없는 것이다. 생명은 그냥 생명이기만 하면 그 생명의 본성은 억제할 수도 없이 그냥 표현되고 지켜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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