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7. 2. 8. 08:43 Writer : 김홍덕

사도행전 8장에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재물을 맡은 내시(장)이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길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간 빌립 집사와 마주치는 사건이 있습니다. 이때 내시장은 병거에 타고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는데 성령께서 가까이가라는 명을 듣고 빌립 집사가 가까이 가서 묻기를 “네가 읽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내시는 “가르쳐 주는 이가 없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반문합니다. 그리고는 빌립 집사를 병거에 태우게 되고 빌립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하니 가다가 물 있는 곳을 발견하고서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 내게 세례를 베풀라”고 하고서는 자기 병거에서 내려서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성경에서 믿음을 위하여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그러면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는지를 잘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내시장은 병거에 타고 있습니다. 그는 국고를 전부 관장하는 큰 권세를 가진 자이고 병거는 그의 권세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의 세계이고 의로움입니다. 그것은 곧 애굽과 같이 자기 육신의 능력으로 이룬 것이고, 예수님을 찾아 온 부자 청년이 가진 재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혼자 읽고 있는 그 성경이 자신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 병거에서 내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세계, 곧 병거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지도해주는 이가 없으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믿음을 얻고자 수고했습니다. 먼 곳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배를 드리러 다녀가는 그는 엄청난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아마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성경을 보고 나라를 건너 예배 드리는 엄청난 행위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자기 세계를 벗어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길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빌립집사가 나타났습니다. 빌립집사가 물었습니다. “네가 읽는 것을 아느뇨?” 그러자 그는 “지도해 주는 이가 없는데 어떻게 알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행동 같지만 행동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말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존재고 상황인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 오늘날 목사와 같이 스스로 자신이 신앙을 위하여 뭔가 하고 있는 사람에게 빌립집사와 같이 물으면 답은 다를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그것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삽니다. 제 친구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신앙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논쟁에서 자기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임마! 목사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고. 아직 전도사도 아닌 신학생인 시절에.


만약에 내시장이 빌립을 보고 예전 나의 친구처럼 자신은 화려한 병거에서 당시에 보통 사람은 읽는 것은 고사하고 보기도 힘든 성경을 읽고 있는데 ‘허럼한 나그네 주제에 뭐라는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분명히 그는 세례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먼 곳 에디오피아에 여기까지 와서 예배 드리고, 또 오가는 시간에도 이렇게 성경을 읽고 노력하는데 너는 빈손으로 예루살렘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네가 뭘 알겠느냐고 생각했다면,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뭐라고 하느냐고 했다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시장은 자신이 행동으로 하고 있는 것, 그렇게 나라 일이 바쁜 중에도 먼 곳에서부터 예배드리러 온 것이나, 그 오가는 중에도 성경을 읽는 자기 행동이 자신의 믿음을 성장케 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의로워지는 것이라고 끝까지 생각했다면 성령에 이끌린 빌립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먼 곳에서부터 예배드리러 오는 그 행동이나 성경을 읽는 것과 같은 행동이나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고백하고 시인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를 시인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행위인 것 같지만 실상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고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위하여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은 행동으로 믿음이라는 피라미드의 위로 올라 갈수 있다고, 바벨탑이 하늘에 닿을 것이라 여기고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의로워지려는 행함이 아닌 것은 언뜻 보기에는 행함과 같지만 우선 그 방향이 다르고, 행함으로 의로워지는 것에 대한 대화나 행동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고백하고 드러내는 행동인 것입니다. 방향이 다르다는 것은 피라미드나 바벨탑의 꼭대기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시장과 같이 자신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고백은 자기의 행위가 의롭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많은 행위를 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 내시장은 빌립을 자기 병거에 태웠습니다. 빌립은 성경에 이끌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의도하심이 육신이 된 사람입니다. 그를 병거에 태웠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을 자기 세계 안으로, 그리고 자기 마음에 그 이미지(형상)를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 것은 자신을 어떻게 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이끌림을 받은 사람이 행동하는 것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가 자기 세계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받아들인 빌립 집사가 그리스도를 이야기 했습니다. 그의 마음 밭 안에 자기가 받아들인 성령의 잉태하심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자신이 먼 곳까지 와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있지만 무슨 의미인지 모른다는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고백(인정)하고 자신이 가진 세상의 모든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초라한 사람인 빌립 집사가 성경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다고 하니 자기 신분이나 자존심이나 행위는 버려두고 자기 세계의 상징인 병거 안으로 초대한 것 그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백하고 영접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가 그의 세계에서 내렸습니다. 피라미드의 최상위 층에서 내린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닮은 삶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 내리지 않는데 빌립이 내리게 할 수 없습니다.(신앙이란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또한 어떠한 강압이나 행동이나 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말씀을 듣는 것, 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병거에서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세례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세례는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물은 말씀입니다. 세례를 받겠다는 것은 자기가 이때까지 해 온 방식, 멀리서 예배드리러 오가고 성경을 읽는 것과 같은 행동(물) 속에서는 살 수 없다는 마음과 자기 안에 있는 것이 행동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믿음의 본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행함이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며, 믿음을 위하여(행위의 탑을 쌓아 하늘에 오르는 것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며, 믿음이 왜 절대적 수동의 세계이며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함으로 의로워진다고 하는 것은 행함이 믿음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잠을 자야하는데 자지 않고 새벽기도회나 철야기도회를 하면 좋은 신앙이라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에 건축헌금을 몇 천 만원 약정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잠이 오면 ‘나는 잠을 이길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내시장이 모른다고 고백한 것과 믿음입니다. 교회가 허물어져가서 새로 지어야 하는 상황이거나,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지만 사실 나 먹고 살기도 힘들기에 자기 가진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는 아까운데 헌금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것은 다 노릇이고 무덤에 회를 칠하는 것일 뿐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존재에 대한 고백을 하고 하나님의 의를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것, 곧 말씀을 듣는 것과, 자기를 고백하고, 말씀을 듣기 위하여 자기 육신을 말씀이 있고 고백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거나 청하는 것이고, 또한 전하는 자는 그런 청함에 자기 육신의 삶을 소비하는 것, 그것이 믿음의 나눔이고 공동체며 교회고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What will we do for faith? 


In Acts 8, there is an incident in which the eunuch (chief) of all the treasures of Gedgee, Queen of Ethiopia, faces Philip's deacons, led by the Holy Spirit to the wilderness, in the way of worshiping in Jerusalem. At this time, my mayor was in a chariot reading the book of Isaiah, and when the Holy Spirit was told to come near, the deacon Philip approached and asked, "Do you know what you are reading?" Then he said, "How do you know there is no one to teach?" Then Philip's deacon was brought to the chariot and the Philip priest informed him about Jesus Christ. Then he found a place in the water, and said, "Behold, there is no water for me to be baptized, so baptize me." I get a scene.


We can see in this Bible what we should not do for faith, and what we really do not do. First of all, my market is in a chariot. He has great authority over all the treasury, and chariots are symbols of his power. And his world and righteousness. It was the same as the wealth of a rich man who had come to Jesus with the power of his flesh like Egypt. The Bible that he is reading alone needs to get off the chariot to become his story.


But he wanted to know Jesus Christ in the world, the chariot. But there was no one to guide him, so I could not tell. He worked hard to earn his faith. It was a tremendous effort to worship in the distance from Ethiopia to Jerusalem. He might have thought that maybe he could do it himself. But despite the tremendous act of worshiping and crossing the country by seeing the Bible itself, the Bible was neither understood nor out of the world.


On his way, however, a deacon Philip, led by the Holy Spirit, appeared. The deacon Philip asked. "Do you know what you read?" He said, "How can you know that there is no one to guide you?" This is behavior, but not behavior. It is not the same as the fulfillment of God's righteousness in his own words, but the confession of what he is and what he is. This is what we can do before God.


Maybe the answer will be different if you ask the deacon Philip to a person who is doing something for his faith like the pastor himself today. No, we live by experiencing it. There was a religious debate with my friends when my friend was in seminary. But when his argument was not accepted in an argument, "Hey! If the pastor is so, I know that! " As a seminary student who is not a preacher yet.


If my market is looking at Philip and I am reading a Bible that I find difficult to read from ordinary chariots like a friend of mine at the time, as in my old friend, what would happen if I thought " Was it? Obviously he would not have been baptized. I have come to Ethiopia in the distance and worshiped here so much, and I try to read the Bible in the same time, and when I go to Jerusalem with a blank hand, if I thought what you would know, if you said nothing, I would not.


But my market is what I am doing with my actions, that I have come to worship from a distant place even in the midst of my country, and that my own actions of reading the Bible in the course of my life will grow my faith, If we had thought to the end, we would not have been able to meet Philip led by the Holy Spirit. The act or act that comes from worshiping from a distant place, such as reading the Bible, can not be done before God.


But he confessed and admitted that he did not know. This is like admitted sin of the Bible. This seems to be an act, but the reality is the recognition and confession of existence. What God says not to do for faith is that by action you can go up to the pyramid of faith, that the Tower of Babel will reach heaven, and do not do anything.


What God wants, what the apostle Paul is saying is not what it is intended to do, but at first glance it is like act, but at first it is not a dialogue or action about the direction that is different, I will. A different direction is not going to the top of the Pyramid or the Tower of Babel, but going toward revealing that you are a stranger like my market. His confession is not that he has justified his actions but that he has done a lot of things, but he does not know anything.


My market put Philip in his chariot. Philip was a man of the Bible. In other words, the intention of the Holy Spirit is the flesh. To have him in chariots means that the Word has accepted the image of the flesh into his world and into his own mind. He did not do what he did, but obeyed what the person who was attracted to the Spirit acted. He allowed him to come into his own world. It was just that.


Then the deacon Philip, whom he accepted, spoke of Christ. The conception of the Holy Spirit, which he has received in his field of mind, has begun. That's it. The deacon of Philip, a shabby man who confesses his identity of self-existence, who has come to a distant place and worshiped and read the Bible but does not know what it means, and can not compare with all of his world, He was the only person who abandoned his identity, his pride or deeds, and invited him into the chariot, the symbol of his world. That is to confess, accept, and believe.


Then he came down from his world. It is from the top floor of the pyramid. It is a life that resembles Christ from heaven to earth. He can not let Philip down because he does not come down on his own (faith is not to be forced), nor did he have any coercion, action, or will. It was just listening to the word. By the way, he came down from the chariot. And it was not for another reason that he came, but for the baptism. Baptism is the entry into and out of the water. Water is the Word. To be baptized means that you can not live in the same way that you have been doing so far, worshiping and reading the Bible, and that what is in you is expressed in your actions. 


This is what we see as beliefs. That is why faith comes from hearing, that works are not made righteous, that nothing is done for the sake of faith (to ascend to heaven) and that faith is an absolute manual world and that obedience is better than sacrifice It is to say.


Because we are righteous by doing, we think that the act leads to faith. It is supposed that people should do what they do not do. I think it is a good faith to have a morning prayer meeting or a night prayer meeting without sleeping while sleeping. I think it is my belief that I make a pledge of building donations for tens of millions of won in difficult circumstances.


But that is not it. When I come to sleep, it is my belief that my market does not know that I am a person who can not win sleep. It is faith to confess that there is a situation in which a church needs to be rebuilt and a new one is created, or that there is a person who really needs help, but it is hard to eat and live, so that he has a desire to save his own money. It is not that, but that it is necessary to make a contribution to the heart, and it is all done, and it is only to paint the tomb.


True faith is to confess and to accept the righteousness of God, to listen to the Word, to confess oneself, to listen to the Word, to go to the place where the body can speak and confess , And the one who communicates is to consume the life of his flesh in such a request, that is the sharing of faith, community, church, and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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