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해라고 하는 태양은 이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에 있어서 빛의 근원이다. 이른바 광원(光原)인데, 그렇다고 태양이 빛 자체인 것은 아니다. 빛을 내는 물체, 다시 말해서 빛이 형상화된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과 같이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빛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것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것을 인식하게 하고, 그 정체에 대하여 바로 깨닫게 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무엇으로 그렇게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을 가진 삶으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마치 태양이 빛을 내듯이 말이다.


하나님께서 궁창 위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빛을 내는 존재들에 대한 예표이다. 해와 같이 그 빛을 스스로 내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그 빛을 반사 시키는 이도 있고, 또 이런 유관성은 없지만 어두운 곳에서 빛을 내는 별과 같이, 하나님의 밝음은 없는 곳에서 나름의 빛을 내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관련포스트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넷째 날 (1) - 광명의 의미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넷째 날 (2) - 첫째 날 빛과 네째 날의 광명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넷째 날 (3) - 낮과 밤이 있어 좋은 이유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넷째 날 (4) - 낮과 밤의 의미


그리고 이 말씀은 5일째에 들어서서 바다 속의 생명과 공중의 새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 아주 중요한 관점이다. 필자도 이것에 대하여는 제법 깊이 있게 다루어 보았었다. 왜냐하면 바다는 세상이라고 했는데, 이 안에 있는 생명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중이라는 것은 좌표와 근거가 불분명한 생명 곧 무당과 같이 신접한 생명들을 말씀하심인데 이것 역시 복을 주셨다는 것 역시 그들의 왕성함도 하나님의 의지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매우 용납하기 힘든 명제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이 세상을 배척하고, 세상은 마귀의 손 아래 있는 것이라 늘 경계하고 전쟁의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아는 것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사는 것에 있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과정 속에서도 이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아담과 하와가 먹은 선악과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바리새인들을 악하다고 보신 관점과도 연관이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필자는 기독교 신앙이 두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형식과 내용에 관한 것으로 기독교가 형식을 갖추어 내용에 이르려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선악과에 대한 그른 해석이라고 했다. 선악과에 대한 바른 의미를 알지 못하면 이 다섯 째날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계속)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