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전 11:27)
성찬식은 어쩌면 그나마 경건을 유지하고 있는 종교의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도들이 나름 정성을 다하는 예식이다. 그 바탕은 바로 바울 사도의 이 말씀 때문이다. 성찬식을 경건하지 않게 임하는 건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사실은 죄가 무서운 게 아니라 죄로 인하여 받게 될 형벌을 무서워하기 때문인데, 그 형벌은 지극히 육신적인 것임도 부인할 수 없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성만찬에 참여하지 않았다. 시기적으로 보면 그때는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바울 사도는 이 예식을 주님께 받았다고 했다. 포도주와 떡을 먹는 형식에 성만찬의 본질이 있는 게 아니란 의미다. 합당하게 잔과 떡을 먹고 마신다는 건 예식에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고전 11:23)
먼저 생각해볼 것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게 무엇인가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의 본질은 한마디로 거듭남이다.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건 예수님과 같은 생명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식인의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게 그렇게 간단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아마 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건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된다는 것
예수님을 설명하는 성경 말씀 중에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는지,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아마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일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구원도 역시 이것이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곧 나의 삶이 되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뜻은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다.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건 하나님의 의가 육신의 본성, 삶의 본성이 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그리스도다. 그리고 예수님은 육신으로 처음 그리스도가 된 분이다. 그런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건 곧 예수님과 같은 생명이 된다는 말이므로 성찬의 의미는 곧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십자가와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니 주님께 이 성찬을 받았다고 하는 게 진정 합당하다. 그뿐 아니라 진정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모두 예수님의 몸과 피를 주님께 받은 것이다.
성찬을 합당하게 받는다는 건 성찬식을 앞둔 얼마간의 기간 동안 착하게 살고, 말도 조심하고, 음란한 생각도 하지 않고, 경박스럽지 않게 성찬식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 그건 행위로 의롭게 되려는 사람의 경건이다. 무엇보다 그런 식으로 성찬의 경건을 생각하는 게 바로 합당하지 않게 주의 잔과 떡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존재를 의롭게 하신 것이니 행위를 의롭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신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바울 사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라고 했다. 무엇을 먹거나 마셔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려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가진 하나님의 영광으로 되지 않는다. 그걸 먹지 않는 순간이 더 많고, 세상의 먹거리가 모두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마셔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려면 먹고 마시는 존재, 사람이 영광스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사람이 이렇게 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합당하게 성찬에 참예하는 건 일정기간 경건한 행위로 준비하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 존재여야 한다. 그건 바로 예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생명이 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신 것이다.
해마다 성찬식은 주기적으로 돌아온다. 성찬에 임하기 전 행동을 경건히 해야 한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그리스도로 거듭난 게 아니다. 늘 말하지만 노력한다는 것은 이르지 못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런 태도로, 그런 마음 가짐으로 성찬에 임하는 것 그것이 성찬에 합당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성찬에 임하기 전 자기를 살피는 것’은 행동의 경건함이 아니다. 이건 지금도 동일하다. 바울 사도가 살피라고 한 건 자기 정체성이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서 탈이 나지 않으려면 자신이 그리스도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거부반응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 이건 그림자처럼 육신의 유전적 특성으로 예시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성찬을 베푸신 의도도 그리스도고, 바울 사도가 살피라고 한 자신 역시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기준이고,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그리스도인 사람을 위한 성찬이다. 성찬에 앞서 자기 <행위>를 돌아보는 자는 본성이 그리스도인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시늉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자기 본성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생명은 없다.
바울 사도가 책망하는 고린도 교회의 모습도 같은 맥락이다. 먼저 와서 많이 먹는 걸 책망하는 게 아니다. 지혜에 밝은 자신은 성찬에 지분이 더 많다는 태도다. 역시 행위를 기반으로, 세상 지혜로 조명한 신앙의 모습이 큰 사람으로서 자기를 더 높인 교만으로 성찬에 임하는 사람의 모습을 책망하는 것이다. 성찬은 먹는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니 시장하면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한 것이다. 육신의 경건을 살피는 것도 아니고, 육신을 위해 먹는 것도 아니란 책망이다.
해마다 성찬은 두어 차례 돌아온다. 그 전 일주일 정도 혹은 그 이상의 행실을 깨끗하고 경건하게 유지하고 성찬에 임하는 게 합당하게 성찬에 임하는 것이나 자기를 돌아보는 게 아니다. 핵심은 행위가 아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와 몸과 피가 같은 지의 문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자신인지 돌아보라는 뜻이다. 지표는 간단하다. 성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임하고 있는가? 그럼 성찬을 범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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