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사람의 기도다. 지금까지 하늘은 어디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며, 그 뜻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건 무엇인지 그리고 죄와 시험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악에서 건져 주시기를 구한다. 악에서 건져 주시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다는 건 사람이 악에 빠져 있다는 의미다.
사실 지금까지 전개된 주기도문의 내용은 모두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그리스도로 살아가기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이루어진다는 건 곧 죄가 사해졌다는 의미고, 시험을 이겼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하늘의 뜻이 이루어진 사람은 악하지 않다. 유일하게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육신이 된 사람은 그 자체로 선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당연히 선한 존재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는 게 악에서 구원받았다는 의미라면, 우리는 어떤 악에서 건져짐을 받았는지, 즉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또 어떤 위험에서 구원받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악에 관한 고찰은 아직 악에 속한 사람에겐 또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시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을 잘 설명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어떤 젊은 부자가 예수님께서 와서 예수님을 "선한 선생이여"라고 불렀다. 그냥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선하다고 했으니,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가 끝내 돌아가게 할 정도로 매정하게 대하셨다. 예수님은 시작부터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라며 까칠하게 반문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선하시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막 10:17-18)
사람이 악으로 규정하는 대상은 기본적으로 행위와 현상들이다. 어떤 행동은 악하고, 어떤 행동은 선하다고 규정한다. 그래서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는 '우리가 악하게 행동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라는 의도라고 해석하고 믿는다. 악의 실체를 행동이라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교도, 성경 공부도 다 높은 가속도로 이 방향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악하게 행동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악한 행동을 한다면 삶이 재앙을 맞을 것이라 믿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악(惡)의 실체를 행위로 본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처음 행한 악은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순서로 처음이 아니라 선악과가 죄와 악의 시작이란 뜻이다.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는 건 불순종이란 행위라서 선악과 먹은 <행위>를 악으로, 죄로 이해한다. 즉 행위로 지은 범죄로 여긴다. 그런데 선악과가 행위로 인한 범죄라면 여전히 행위로 죄를 범하는 사람에게 구원은 없다. 여전히 행위로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선악과를 먹은 행위를 범죄로, 악한 행위로 믿고 있다.
선악과를 악한 행위로 본다면 사람은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선악과는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존재다. 아담('사람'이란 뜻)이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자리에 있느냐 아니냐가 선악과의 핵심이다. 아담과 하와는 사람의 자리를 버리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처럼 되어야 선해질 수 있다는 생각, 이게 죄의 DNA다. 실제로 죄는 '자기 자리를 벗어난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어원이다.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행위가 아니다. 존재가 존재 목적 안에 있는지다.
자기 정체성을 벗어나려 한다는 건 현재 자기 정체성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만족의 동산인 에덴동산에 있을 수 없었다. 실제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자신이 부끄럽다는 건 자기 존재가 만족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자리를 부끄럽게 여기고 벗어나 하나님처럼 되려는 의도, 이것이 바로 죄의 근원인 <악>이다. 그러니까 악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가 자기 정체성을 벗어난 것이다.
악의 실체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 정체성이다.
그러므로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는 "하나님! 나의 정체성이 회복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주기도문 내용이 모두 이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려면 당연히 지금 내가 하나님이 정한 자리를 벗어나 있다는 인식과 고백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가 자리를 벗어났다는 걸 모르는데 자리를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이 사람의 존재 정체성을 벗어났다는 걸 인식하거나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죄를 시인하고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건 모두 거짓말이다. 시인해야 하는 건 하나님 정한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8-9)
따라서 우리를 악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는 단순히 악한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나를 제어해 주시길 기도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정한 자리를 떠나 있는 게 악이고, 자신이 그 악에 속해 있다는 걸 시인하는 고백이 선행되어야 하는 기도다. 이를 위해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구하라고 하시고, 하나님의 의가 나를 다스려 주시기를 구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의 한계(자리)를 넘은 능력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험을 이겨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구하라고 하신대고 구하면(주기도문대로 기도하면) 하늘의 뜻이 사람에게 이루어지면 시험은 쉽게 이긴다. 모든 건 하늘의 뜻, 곧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이루어지면 사람은 자기 존재 정체성 안에 거한다. 바울 사도는 이를 <그리스도 안>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사람은 선하다. 결국 하늘의 뜻,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이 본성이 된 사람,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시험도 이기고 선에 거하게 된다, 예수님은 이걸 구하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악에서 벗어난다는 건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이는 하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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