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6장)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하나님께로 그리고 죄 사함, 이 하나의 은혜는 사람을 다른 존재, 다른 격으로 바꾼다. 거룩하게 된다는 건 하나님이 보실 때 어두움과 사탄과 죄 가운데 있는 사람과 구별된다. 거룩은 곧 구분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죄인과 하나님 아들은 전혀 다른 격을 가진 사람이다.
거듭난 다른 생명으로 구분되는 것이 거룩함
사람은 거룩은 경건하고, 청결하고, 더러워질까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성전 기물에 파리가 빠지면 기물이 더러워졌느냐 아니면 파리가 거룩해졌느냐는 거짓말 같은 논쟁을 일으키는 게 사람이 가진 거룩함에 대한 개념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거룩은 구분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건 사실 다른 표현도 아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거룩한 물건이 있다면 당연히 다른 것과 구분하여 둔다.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를 살피시기에 다른 존재라면 당연히 구분하신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과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 사탄의 권세를 따르는 사람과 하나님께 속한 사람, 죄인과 의로운 하나님 아들, 이 명백한 구분들은 생명체와 무생물의 차이처럼 분명하게 구분하신다. 존재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듭난다는 건 이전과 다르고 세상 가치관을 의로 삼는 사람과 다른 생명이 되는 것
존재가 다르다는 건 깊은 의미가 있다. 가장 먼저 한 존재가 자신의 노력으로 다른 존재의 세계로 갈 수 없다. 개가 아무리 노력해도 고양이가 될 수 없다. 존재가 달라지는 방법은 오직 다른 존재로 다시 나는 방법뿐이다. 성경이 굳이 거듭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여기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존재적 관점으로 사람을 보신다는 걸 믿어야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알고 믿을 수 있다.
거룩함은 개념을 아는 게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내가 거룩하게 되느냐는데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 앞에 거룩해진다는 건 나의 존재 정체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어두움에서 밝음에 속한 사람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무엇보다 죄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의미다.
구원은 곧 다른 생명으로 구분되는 것
잊은 듯 하지만 우리는 지금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쉬지 않고 전도 여행을 다닌 긴 인생의 후반부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도로 세우신 뜻을 간증하면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신다는 걸 간절히 전하고 있다. 사도 바울의 간절함과 하나님의 뜻은 당시의 사람들만을 향한 게 아니다. 오늘 우리를 향하시는 말씀이다.
시대와 무관하게 구원을 얻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지금까지와 구분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이란 걸 알아야 한다. 이렇게 구분된 삶은 생명과 정체성이 바뀌는 게 시작이다. 그리고 본성과 정체성이 바뀐다는 건 가치와 안목이 바뀐다는 것이다. 찬송가 가사처럼 이전에 좋던 게 이제는 값 없어지는 변화다.
거룩하게 된다는 건 가치와 안목이 바뀐다는 것
그렇다면 가치와 안목이 바뀌면 어떻게 되는가? 먼저 필요가 달라진다. 필요가 달라지면 하나님께 구하는 게 달라진다. 소망도 평안도 달라진다. 이전에는 하나님께 육신의 평안과 세상 가치로 귀한 걸 구했지만, 존재가 바뀐다면 세상이란 건축자가 보기에는 쓸모없어서 버리는 돌 같은 가치를 구한다. 이 원리로 내가 안목이 바뀐, 존재가 바뀐 사람인지를 단순하게 검증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기 전이나 하나님을 믿는 지금이나 같은 걸 가치로 여기고 간구하고 바라고 있다면 그건 구분되지 않은,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다. 당연히 거듭난 존재가 아니다. 이건 너무나 쉽게 오늘 내가 구원받은 사람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기 전후에 귀한 것이 바뀌었는지를 보면 자기 구원을 알 수 있어
바울 사도가 간증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신 뜻은 바울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거나, 사도라는 귀한 직임을 받은 사람을 부르는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또 하나님이 바울 사도를 부르시고, 불러서 전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 뜻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을 창조하실 때 가진 뜻 그대로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가진 성품을 표현하시려는 계획, 이것 하나다. 이 뜻에 순종하는 게 바로 우리의 구원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성경으로 말씀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높이 달리게 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듣고 보고서 그 말씀에 순종하라고. 그리고 사람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존재 목적과 다른 삶을 깨닫고 올바른 자리로 돌아가겠다고만 한다면 성령께서 그 마음을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시켜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걸 믿으면 구원에 이른다는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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