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6)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이유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 구원은 세상에서 힘들게 하는 인생을 평안으로 이끄는 구원이 아니다. 존재로서 사람이 자기 존재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두움과 죄에서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다. 이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보이신 정체성 그대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인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을 말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이자, 인생의 존재 목적이 밝아진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 된다. 사람이 태어나면 인류에 속하게 되는 것과 같다. 대학에 입학하면 대학생이 되고, 학교에 속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무리가 바로 거룩하게 된 무리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구분이 있는 거룩함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나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구분이 생기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이 무리, 이 공동체가 교회다. 건물을 짓고 사람을 모아 교회가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이 되는 순간 하나님 나라인 교회에 속하게 된다. 남은 건 그런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만날 때 교회의 형식이 완성된다.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게 하나님 나라인 이유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 만나니 그 만남에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건 당연하다. 이게 교회의 모습이다.
교회는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만남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에게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한 목적도 모르는 어두 삶에서 빛으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하나님께로 회복된 구분된 사람 중에서 기업을 얻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기업은 하나님의 의에 관한 사명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려 주셨다. 결국 사도 바울이 받은 거룩자 중의 기업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성경에 나오는 기업은 상속, 소유 등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헬라어가 사용된다. 이러한 개념은 부모가 자식에게 상속하는 게 당연한 가치에서 비롯된 말이다. 즉 하나님의 기업을 얻는다는 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경에 상용구처럼 나오는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말에서 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최초의 근거는 어쩌면 주기도문이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나님을 부를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일러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다. 그런 개념조차 가져 본 적이 없는 유대인들에게 이건 놀라운 충격이었던 것만 봐도 이 호칭은 놀라운 호칭임에 틀림없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에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이어받아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는 당연한 이치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장자로 첫 열매가 되셨고,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로 거듭나므로 같은 유전자와 본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중에서 하나님과 나 자신이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이 되는 정말 본질적인 근거는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듭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육신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고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형성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기업은 아버지의 아들이 상속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업을 얻는다는 건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것
하나님의 기업을 얻는다는 건 결국 하나님의 의와 뜻을 이어간다는 뜻이다. 이걸 성경에 있는 표현으로 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다.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건 하나님의 말씀, 곧 의와 뜻대로 삶을 산다는 뜻이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의와 뜻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겠다는 것이니, 성경대로 사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무엇을 나타내야 할 것인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보여주셨다.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본성, 육신이 된 말씀인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본성이다. 이 본성이 하나님의 성품이고, 하나님은 자신이 이런 성품을 가졌다는 걸 사람을 통해 표현하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 뜻이 바로 우리 육신이 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평교인의 성경 보기 > 사도행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78 – 사람과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 (0) | 2024.12.13 |
---|---|
(사도행전) 77 –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 (0) | 2024.12.09 |
(사도행전) 75 – 거룩하게 하고 (3) | 2024.12.05 |
(사도행전) 74 – 죄 사함 (0) | 2024.12.03 |
(사도행전) 73 –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고 (1) | 2024.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