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의 시작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고, 그것이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착한 일은 ‘복음으로 교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으로 교제하려면 교제하는 사람 안에 복음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또한 복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착한 일은 당연히 하나님이 보실 때 착한 일, 즉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와 뜻이 사람 안에 있게 되는 일이 복음이고, 사람 안에 있는 그 복음으로 서로 교제하는 것이 착한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대로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형상 곧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람에게 주신 육신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한 곳입니다. 사람이 육신을 가진 이유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려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심과 같이 육신을 가진 인생이 육신으로 섬기고 수고하므로 그 모습을 본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육신을 드려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착한 일 곧 복음으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으로 교제하는 착한 일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계속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얼핏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해야 한다는 어긋난 신앙관을 뒷받침하는 말씀 같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구원을 또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신앙의 목표로 알고 평생을 수고하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구원은 하나님께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고 하심과 같이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 동안 하나님의 착한 일을 하면서 살기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인생은 괴로운 것이라며 어떻게든 견뎌야만 하는 곳으로 알던 사람은 천국에 못갑니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지옥이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어떻게 천국에 간단 말입니까? 그것은 한 번도 야구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이 메이저리그에서 최고 선수가 될 수 있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착한 일이 시작할 때는 온전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열심히 노력해서 완성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소망과 같은 맥락인데, 성경이 말씀하시는 소망은 밑도 끝도 없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가 약속된 것과 같은 상태이기에 그 자리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기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경부선 선로 위에 있는 기차이기에 그 종착점에 이를 것이라는 것과 같은 것이지, 지금의 상태와 무관한 것을 예수 이름으로 소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착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도 착한 일과 궤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착한 일을 하는 본성을 가진 존재, 억지로 수고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이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자기 본성이 되어 그 본성으로 서로 교제하는 이들이어야만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향한 의와 뜻이 사람의 마음에 심겨 본성이 되어 그 본성이 나타나는 삶을 교제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어떤 날인가? 성경에서 주님의 날은 안식일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특정하여 기념하라고 하신 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의를 기념하고 표현하는 날들입니다. 특히 안식일은 천지창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안식하셨다는 것에 유래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 분명하게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날, 주의 날을 안식일과 연결하는 것은 난데없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일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이 사람 안에 본성이 되어 그 본성을 서로 나누는 것을 말씀하심인데 바로 그 본성이 <그리스도의 본성>인 것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안식하셨다는 것은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본성이 나오면 하나님께서 그 수고를 그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 평안한 상태, 곧 하나가 된 상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와 뜻이 본성이 되어 그 본성으로 섬기며 교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궁극적으로 뜻하신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 사람은 안식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의와 하나가 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그 심령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의와 뜻이 심겨서 본성이 되어 그 본성으로 살면서 서로 교제하는 이는 그 수고가 안식이 되는 날들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육신이 쉬게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은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대로 하나님의 의를 그 안에 담아서 그것을 표현하는 삶을 사는 것에 늘 수고하나 그 수고로움이 안식과 평강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만드시는 뜻이 다 이루어지셨기에 쉬심과 같이 사람도 하나님께서 가지신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가 온전케 되어 그 삶이 안식하듯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은혜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확증할 수 있는 것은 바울 사도의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이 편지를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착한 일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이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확신한다는 것은 바울 사도는 이미 그 과정이 자기 안에 다 있어서 착한 일도 그리스도 예수의 날도 다 맞이한 사람이기에 그런 사람으로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보니 그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바울 사도는 지금 옥에 갇혀 있는데 그의 삶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을 살고 있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안에 이미 그런 모든 것이 다 있기에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 곧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이 다 이루어지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육신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그것을 표현하는 안식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삶은 정작 옥에 갇힌 삶이고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이 안식은 육신의 평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은 인간들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 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이 이루어진 날들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수명이 다할 때 까지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대로 하나님의 의와 뜻을 나타내며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날을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께서 육신을 드려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심과 같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아들로 드러났다면 그것은 아버지가 나타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났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났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1: 3-11) Good day and Christ Jesus day (2)
(The beginning of the good work till the day of Christ)
The Apostle Paul tells the Saints in the Church of the Philippians that God has begun a good work and that it will be done until the day of Jesus Christ.
being confident of this very thing, that He who has begun a good work in you will complete it until the day of Jesus Christ; (Philippians 1: 6)
The good thing that God has begun is 'to associate with the Gospel.' It is a reasonable reason to have the gospel in the fellowship of the gospel. The gospel is also of God. The good things the Bible says are, of course, that when God saw it, a good thing, the will of God, was made. Therefore, it is good thing that the righteousness and the will of God are in the people, and it is good to fellowship with the gospel in man.
And this fellowship is what Jesus did on the cross. The cross is the image of God's image in the form of God, the image of the human being. The reason why a person has a body is that because he showed the body of Jesus on the cross and was the Son of God, so that the life of the flesh serves and serves the flesh, so that anyone who has seen it will know God. It is to show each other each other's flesh and to show God's character, that it is a good work that God has begun and a fellowship with the gospel.
And the good work of fellowship with this gospel continues throughout the day of Christ Jesus. This is a word that seems to support a misguided belief that many people should strive for their lives to live according to God's will. But the opposite is the case. Many people know that salvation is the goal of their faith to die again and go to heaven, and they endure for the rest of their lives.
But salvation is the beginning of faith, just as God has said that he has begun a good work. And while living in this land, I do not realize that this world is the kingdom of God because I live in the good works of God, but rather that life is painful. I lived in the world made by God as hell, how simple is it in heaven? It's the same logic that anyone who has never played baseball can be the best player in the majors.
This was not perfect when God's good work began, but it does not mean that it is accomplished by hard work. It is in the same context as the hope of the Bible, that the hope that the Bible speaks is not an endless end, but a condition that is the same as it is promised. It is to be born again of the Son of God and to reach the fullness of Christ.
It is like being on the train on the Gyeongbu Line, so that it will reach its final destination. It is the day of Christ Jesus, because he is a good work that God has begun. The day of Christ Jesus is the same as the good work. A person with a nature to do good work, not a hard work and hard work, but the nature is such a thing, that it will come to the day of Christ Jesus.
We can say that the gospel of God is our nature and that we can reach the day of Christ Jesus if we are the ones who communicate with each other in their nature. Again, not keeping the Bible in action leads to the day of Christ Jesus. That the righteousness and the will of the God-created person are planted in the heart of man and become the nature and associate the life in which the nature is manifested reaches to the day of Christ Jesus.
And what is the day of Christ Jesus? In the Bible, the Lord's day is often a symbol of the Sabbath. It is because the Sabbath is the day that God specifically commemorates. Of course, there is a season that God has ordained. But all of these are the days of celebrating and expressing the righteousness of God. In particular, the Sabbath comes from the fact that God made man and rested in the creation of heaven and earth. This is clearly mentioned when God gives the Ten Commandments.
It is not necessary to connect the day of Christ and the day of the Lord with the Sabbath. A good thing is that God created man, that man is natures in nature, and that his natures are shared with one another, which is the very nature of Christ. In Genesis, God made man and rested that God's work ceases when the nature of Christ comes from man. And it is also a state of peace, a state of unity.
Therefore, the righteousness and the will of God become the nature, and the person who serves and communicates with the nature is the image of the person God created the world and ultimately willed. This means that the person is a person who rests and becomes one with God's righteousness. In other words, a man who is in the nature of God and the will of God created mankind by living a life of its nature and being in contact with one another will greet the rest of the day.
But this does not mean that the physical body is resting. The flesh is always trying to live a life that expresses God's righteousness by putting the righteousness of God in God's purpose, but the effort is rest and peace. Just as God has made all the will of mankind, so is man, that the purpose of life and meaning of life in God is perfected, so that the life of God is rested. It is also grace.
It is the apostle Paul who can confirm this. The apostle Paul is now writing this letter in prison, saying that the good works of the saints of the Philippian church are certain to come to Christ Jesus' day. Paul is convinced that the apostle Paul is already in the process and that he has met all the days of Christ Jesus so that he is convinced that they will be so when they see the saints of the Philippian church.
If you think about it, Paul's apostle is now in prison, and his life is said to mean that he is living the day of Christ Jesus. How can you be sure that you do not know yourself? You can be sure that you already have everything in you. In other words, the apostle Paul is sending out days of rest, expressing it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the purpose God has made for man, and not the end, but the whole life of the flesh.
However, the life is a life imprisoned in jail and the state. So this rest is not the peace of the body. This day of Christ Jesus is not the day when the desires of men are fulfilled, but the days when God made man's will. It is to live the day of Christ Jesus to live in manifestation of the righteousness and will of God according to the purpose of God's people until the end of the flesh's life. And that is to take the cross as Jesus revealed the flesh to the Son of God on the cross. If it is revealed as a son, it is because the Father has appeared. It is because God has appeared, that is, the appearance of God.
'평교인의 성경 보기 > 빌립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빌립보서 1:12-30) 복음의 진보 (0) | 2017.07.08 |
---|---|
(빌립보서 1:3-11) 그리스도의 날 (0) | 2017.07.07 |
(빌립보서 1:3-11) 착한 일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 (0) | 2017.07.04 |
(빌립보서 1:1-2) 바울 사도의 문안(4) (0) | 2017.07.03 |
(빌립보서 1:1-2) 바울 사도의 문안(3) (0) | 2017.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