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가면 은근히 신앙에 대한 어떤 수준이 존재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래도 뭐라도 말이라도 한 마디 하려면 어떤 신앙의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는 느낌은 교회에 얼마 다니지 않아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면 아무래도 방언이라도 하는 사람의 말발이 더 쎈 것이 그런 것을 증명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푯대를 향하여>라는 것은 아주 좋은 명분으로 보입니다. 암암리에 등급화 된 신앙의 레벨이 있고, 그 중에서 어떤 수준 이상이 되어야 온전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의 분위기 안에서 어떤 수준 이상의 자리에 오르면 좋은 신앙처럼 여겨지고, 스스로 자부심도 가지게 되어 다시 그것을 독력하는 악순환도 계속됩니다.
그러나 신앙은 어떤 수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레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신앙에는 더 자라고 성장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분량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더 낮아지고, 자기보다 신앙이 어린 사람의 주장 앞에 자신이 죄인이 되어 수고하는 마음이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행세를 하게 하는 자리에 오를리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가 목자 행세를 하거나 장로가 신앙 좋은 행세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 그리스도의 분량이 자람의 정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
믿음의 분량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그 성품의 다양함을 표현하셨기에 각 사람이 가진 다양함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믿음의 분량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경중을 따진다면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분량에 대한 충실도일 것입니다. 즉 객관적 절대평가가 아니라, 주관적인 상대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이 섬기는 일이라면 그 주신 섬기는 일을 얼마나 잘 했는지, 또 어떤 이가 복음 전하는 것이라면 그 맡은 것을 얼마나 잘 했는지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 망치도 있고 접시도 있는데 같은 기준으로 그것을 평가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지으실 때 그 성품과 개성이 가진 분량을 얼마나 나타내며 사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도 다양함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탐구하듯 하나, 어떤 이는 그냥 지체들과 누리고 놀며 즐기는 것이면 족한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재정적 능력이 충분하나 어떤 이는 그렇지 않고, 어떤 이는 육신적인 기술이 다양하나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하기도 합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에서 몸의 지체와 은사의 다양함을 이야기 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푯대는 객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푯대는 각자의 분량이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삶에 부여하신 삶, 그것으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푯대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구원을 이루라고 하고, 푯대를 향하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구원을 이루는 것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의 삶을 통하여 충만히 표현하는 것이 바로 바울사도가 말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마치 신앙의 목표이고, 그 완전함을 향해서 자기 행실을 잘 다스리는 것이 푯대를 향하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구원은 시작이고, 그 시작된 구원을 육신이 살 동안 육신 가진 인생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바로 푯대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만드신 뜻을 자기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깨달은 자기 존재의 목적대로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바로 푯대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그러므로 이 푯대는 신앙의 어떤 수준, 특히나 그것이 육신으로 성경을 완벽하게 지키는 것이라는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나, 방언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객관적 기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거듭난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된 구원이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의 분량을 전부 그 구원을 이루어내는 것에 사용하는 것이 푯대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함을 이룬 사람들이 푯대를 향하여 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만드신 뜻을 자기 인생을 살 동안 온전히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하나님께서 그 풍성한 성품을 따라 다양하게 만드신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충실하게 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이고, 온전히 구원을 이루는 것이며, 믿음의 분량대로 행하는 것이며, 온전히 푯대를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16)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3: 1-16) Towards the goal in accordance with the amount of faith ...
There is a certain level of faith in the church when you go to church. The feeling of reaching a certain level of faith in the church is something you can tell because it does not go to church much. If we talk about the Holy Spirit, we can prove that the person who speaks in tongues is more powerful.
From that point of view, it seems to be a very good cause. There is a level of belief that is graded in the dark, and at least some level should be enough to create an atmosphere of integrity. And if you climb above a certain level in the atmosphere of such a church, it will be regarded as a good faith, and you will have self-esteem and continue to vicious cycle again.
But faith is not at a certain level. There is no level. Of course, faith has grown and grown. However, the fact that he grew up in the portion of Christ is lowered, and that he will not come to the position of making a proposition because he is a sinner and grows up in labor before the argument of a person who is less faithful than himself. It is the amount of Christ that is not the degree to which the pastor acts as a shepherd or the elders perform good faith.
For I say, through the grace given unto me, to every man that is among you, not to think of himself more highly than he ought to think; but to think soberly, according as God hath dealt to every man the measure of faith. (Romans 12: 3)
The amount of faith is related to the diversity of each person because God expressed the diversity of his personality. Every person has that amount of faith. Every person has God's will. If we take the weight of faith before God, we will be faithful to the amount that we have received before God. This is not an objective absolute evaluation but a subjective evaluation.
If the portion of God's ministry is to serve, what God has done is to see how well He has done His ministry, and if somebody has preached the gospel, how well He has done it. Just as we do not have a hammer and a plate in our home and we do not evaluate it on the same basis, God is also a matter of how much we express our character and personality when we build ourselves.
There is also diversity in people believing in God. Some are just as they explore the Word, others have enough to enjoy and play with members, some have financial abilities but others do not. Some have physical skills but others do not. This is what the apostle Paul told of the various parts of the body and gifts in Corinth.
That's why the goal is not objective. The goal is to have the amount of each. In other words, the life that God has given to his life, that is to express God with it, is the goal. So the Apostle Paul asked to be saved and to turn to the goal. It is what the apostle Paul wants to say that the fulfillment of salvation in himself is fully expressed through the physical life of God given the cross of Christ.
I think that salvation is the goal of faith, and that it is toward the goal to govern self-conduct toward its perfection, but salvation is the beginning, and the beginning of salvation is the life of the flesh, It is going. Salvation is to make God's purpose for his life. It is the goal toward the goal to live faithfully for the purpose of self-existence that has thus been realized.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 (Mark 1: 1)
Therefore, this is not about an objective standard such as an absurd idea of being a certain level of faith, especially that it is a perfect preservation of the Bible in the flesh, but it is not about objective standards like the need to receive tongues, It is to the goal that those who have the righteousness of life use salvation for the salvation of all the body of God's body.
Therefore, those who are perfected go toward the goal is that God fulfills the purpose of making our life fully while living his life. And the journey is to be faithful, to be fully salvation, to do faithfulness, and to go towards the goal, to faithfulness of every person God has made variously according to his abundant nature.
Nevertheless, whereto we have already attained, let us walk by the same rule, let us mind the same thing. (Philippians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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