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사도가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은 어떤 면에서든 자신의 외모나 공적이나 삶의 형태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본성, 그것으로 살 수 밖에 없는 본질을 본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가 누군가가 본으로 삼을 때 그 사람이 세상에서 얼마나 성공했는지, 혹은 수고했는지, 모범적 행동을 하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그 예수님의 말씀이 제자들도 예수님과 같이 성전에 가서 상을 뒤엎거나, 물 위로 걸어 다니라는 의미의 말씀이 아니었듯이 바울사도의 말도 빌립보의 성도들이 자신과 같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또 감옥에 갇히라는 것이 아닙니다.(이 말은 바울사도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을 본받으라는 말에 이어서 빌립보의 성도들이 바울을 본받은 것과 같이 빌립보의 성도들을 보고 본받는 사람들을 보이라고(사람들이 생기도록)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것은 결국 <십자가의 도>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십자가에 드리심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의 겉모습이 아닌 그 속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깨달을 때에 성령께서 그 깨닫는 사람의 이 보고 들은 그리스도의 정체성(형상, 이미지)이 그 사람의 생명의 본성이 되도록 잉태케 하시므로 다시 그 사람도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따라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이신 삶의 의미를 본받았습니다. 글로 친다면 행간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책을 외우거나 그 문장대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쓴 목적과 저자의 의도가 자기 안에서 본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 읽고 깨달은 행간, 곧 예수님이 보이신 삶의 의미가 자기 안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성령께서 그 의미를 생명이 되게 잉태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이 그들의 육신의 삶으로 나타나니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가고 본받고 예수님과 같이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도 같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제자들과 사도들의 행위를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그들 심령에 있는 예수님이 보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좁은 문,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인 사람들이 본 것이 그들 마음에 들어갔을 때 또한 성령이 그것을 생명으로 잉태시키시므로 그들 역시 예수님을 본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살게 되었듯, 제자들을 본 사람들 역시 예수님과 같이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고, 이것이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본받는다는 것에 있어서도 육신이라는 형식의 어떠함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심령에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동일한 이유로 그리스도의 본성을 사는 사람들이 자기 앞에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살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잘 전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심령을 본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왜곡해서 본받기를 바란다는 그 소망을 ‘저 꼴로 무슨?’이라며 겸손하지 못한 것, 교만한 것이라 여깁니다.
바울사도가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것 역시 지금 기독교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나마 바울사도에 대하여는 존경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을 본받으라는 바울사도의 말에 거부감이 없지, 바울사도가 지금 동시대에 옥에 갇혀서 그런 말을 했다면 아마 댓글 융단폭격에 사경을 헤맬지도 모릅니다. 겉모습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이가 있다면 목사 자격 없이 강단에서 설교해도 괜찮은지, 안수해도 괜찮은지 물으면 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의 성도들이 자신을 형식으로 보지 않고 바울사도가 전한 복음의 의를 본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고서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빌립보의 성도들이 바울사도를 본받은 것 같이 빌립보의 성도들 역시 빌립보 성도들을 보고서 본받고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자신의 본성으로 삼는 사람들이 나오도록 하라는 권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십자가의 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근접도 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가 본받기 원한 것은 <십자가의 도>고 그것은 형식이나 행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책의 행간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와 의도 그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그것을 인하여 살고 있기에 빌립보의 성도들, 그리고 이 시대의 사람들도 행위나 형식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자기 본성이 되기를 바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것을 본받았고, 자신을 본받아 다시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사람들도 바울을 인하여 바울을 본받은 사람들이 나온 것과 같이 바울을 본받은 사람들로 인하여 다시 바울사도와 빌립보 성도와 같이 십자가의 도를 본받은 사람들이 나오기를 바라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3: 17-21) What the apostle Paul wanted to say was that the cross
It is not in any sense that the Apostle Paul intended to imitate himself about his appearance, publicness, or the way of life. And to imitate the nature of Christ in himself, the essence that must be borne by it. It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today's standard when we make someone a pattern, how much success the person has done in the world, how he did it, and how he does exemplary behavior.
Jesus said to follow me, just as the words of Jesus did not mean that his disciples went to the temple and overturned the prize or walked on the water like Jesus. The apostle Paul said that the saints of Philippi, And not to be imprisoned in prison. (This does not mean that the apostle Paul told him not to do so.)
The apostle Paul tells us to follow his example and follow the example of Philippians as they have seen him, to show people who see and follow the saints of Philippi. What the apostle Paul is talking about is, after all, a "figure of the cross." The signs of the cross realize that those who have seen the body of Jesus on the cross, not the appearance of Jesus, but the inner man, are the sons of God, and when they realize it, these reports of the Spirit understand the identity of Christ, Is conceived to be the nature of that person's life, so that again, that person also lives a life like Christ.
The disciples of Jesus, and the apostles were not the ones who followed Jesus' actions. They were imitated by the meaning of Jesus' life on earth. If you write, you read the line. The purpose of writing the book and the intention of the author are not naturally memorized or acted on the sentence of Jesus. When the meaning of the life that Jesus read and understood, that is, the meaning of life in which Jesus came, came into him, the Holy Spirit conceived the meaning to be life. And that life appeared to be their fleshly life, and they followed Jesus and became imitated and living with Jesus.
And those who saw the disciples and believed in Jesus went through the same process. I did not see the acts of the disciples and the apostles, but I saw the identity of Christ in Jesus in their hearts in the way they live. Most people did not see it, but the narrow gate, the poor in spirit, saw it. And as the things that have been seen have entered their hearts, and the Holy Spirit has conceived them as life, so also the disciples, who have seen Jesus, have lived with him. This is evangelism, and this is to live according to Jesus.
The fact that people are imitating man also makes reference to what is the form of the body, so that the person with the nature of Christ is not visible to the soul, and those who live the nature of Christ for the same reason, I want to live, but it does not get well. Rather, they consider the desire to distort the minds of those who want to imitate Christ's spirit, and say, 'What is that?'
The apostle Paul said that those who believe in God in the Christian faith now have respect for the apostle Paul. There is no resistance in Paul's apology to follow him, If you say that because you are trapped in jade, you might end up with a carpet bombing. It is because it is only appearance. If there is a person who says that it is not, I can tell if I can do preaching in the pulpit without being a pastor or if I am okay with my hands.
The Apostle Paul speaks this by believing that the saints of Philippi do not see themselves in form, but are the example of the gospel preached by the Apostle Paul. It can be seen from the exhortation that the saints of Philippi, as they have imitated the Apostles of Paul, should also see the saints of Philippi as they see the Philippians and take Christ's identity as their own. This is because those who do not know the way of the cross mentioned above are truths that can not be approached.
What the apostle Paul wanted to do was "a figure of the cross," not the form or action, but the same as the book. The reason and intention of Jesus' cross is to imitate it. The Apostle Paul lives there, so that the saints of Philippi, and the people of this age, are not imitated by works or form, but that the righteousness and will of the God be their own nature. Therefore, those who have seen themselves, and who have received the life of Christ again, have come to have seen the example of Paul because of Paul, and because of those who have been imitated by Paul, they are again like the apostles and Philippians, It is to say what you want people to 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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