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독교인들은 놀랍게도 자기 자신의 구원에 확신이 없습니다. 그것은 쉽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사람(그가 목사든 평신도든)이 있다면 연이어서 “그럼 당신은 화를 내지 않습니까?” 같은 질문을 던지면 쉽게 그 구원의 확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 잘 할 수 있습니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요?”라는 대답을 한다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그 사람은 구원과 성경대로 사는 것을 행위로 보는 사람입니다. 행위야 온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죽하면 바울사도도 행위로 의로워질 육신이 없다고 말했습니까? 그런 육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져서 그 의로움이 구원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에게 구원은 거울만 있어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울사도가 빌립보서 3장에서 “내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은 언뜻 자기 생각을 증명하는 아주 훌륭한 변명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바보들의 아전인수격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이 말씀 외에 바울사도는 육신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고, 이를 변명으로 삼는 바보들은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행위로 의로워지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전혀 다른 두 부류, 그 다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악한 그그과 극의 두 부류가 표현이 같다고 말씀과 그 의도한 것이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정도도 생각하지 못하니 진정한 바보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완전함과 온전함을 혼돈합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완전함을 이야기하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온전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표현하기에 너무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완전해서 우리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 자녀로서 온전한 것이지 완전해서 아들이나 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부모와 자녀가 갈등에 빠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온전함은 그런 것입니다. 목적과 의미 그리고 존재의 정체성으로서의 완벽함을 온전함이라고 하는 것이고, 완벽함은 정체성에는 무관하게 기능이 완전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 3:12)
Not as though I had already attained, either were already perfect: but I follow after, if that I may apprehend that for which also I am apprehended of Christ Jesus.(Philippians 3:12)
바울사도는 자신이 이미 얻은 것도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자신이 도착하고 얻었다(attained)거나 완벽한(perfact)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한 존재의 목적을 아직 수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어떤 물건이 아직 쓸만하면 이사갈 때 버리지 않고 가져가듯이, 하나님께서도 그 뜻하신 바를 나타내 것이 한 사람에게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을 살게 하십니다. 목적으로 인생을 보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잉크젯프린트가 있습니다. 프린트기의 주인은 인쇄를 목적으로 프린트기를 사고 그 안에 잉크가 들어 있는 카트리지를 사서 장착합니다. 목적 안에서 카트리지가 인쇄라는 존재 목적을 위하여 프린트기에 장착되는 순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카트리지는 자기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인쇄하라는 명령을 받으면 자신을 소비하면서 인쇄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소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가 가진 잉크를 다 소진하게 됩니다. 그러면 카트리지는 버려지겠지만 그 잉크 카트리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실 때 프린트기 주인이 잉크 카트리지가 목적 안에서 온전함과 같이 온전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의도한 대로 자기 삶의 목적을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임을 순종하며 사는 것이 자기 존재의 목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인쇄명령을 받고 자기 잉크를 소진하면서 인쇄하는 카트리지와 같이 자기 육신을 드려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며 삽니다. 그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카트리지가 인쇄할 그림이나 문자를 설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육신의 소비가 끝이나면 육신의 장막을 벗고서 하나님의 의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말씀하는 다 이룬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울사도가 빌립보서에서 한 말씀을 자기가 아직 구원을 이루지 못한 것의 이유와 변명 그리고 면죄부처럼 이해하는 것은 도용입니다. 훔친 것이라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의로워지려는 자기 안목을 숨기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행동을 구원이 기준으로 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는 순간 확신하는 바가 되는 것이고, 그리고 그 구원을 자기 육신의 능력이 닿는데 까지 표현하며 사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아직 자신이 살아 있고, 또한 자기 마음에 가진 복음을 위한 소망들을 다 이루지 못하였기에 아직 잡은(apprehended:체포되다, 파악하다)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 알아가고, 더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마음을 자신이 아직 완벽(Perfect)하지 않고 다 이룬(아직 자신은 더 성장할 것이 남았다-목숨이 있는 동안) 것이 아니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바로 알고 온전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씀을 보고서, ‘구원은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여기거나 ‘구원의 확신이 있다는 것’을 겸손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 뭔지 모르고 확신이 없고 아직도 노력하는 사람들, 구원이 시작이 아니라 목적인 사람,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도용하고 싶은 말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온전한 구원의 정체성, 자기 안에 있는 본성을 사는 날 동안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의 온전한 고백인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3:1-16) I count not myself to have apprehended
Many Christians are amazed at their own salvation. It can easily be proved. If you are convinced of salvation (whether he is a pastor or a laity), you can easily ask questions such as "Are you not angry?" And you can easily see where the confidence of that salvation comes from. "How can a man do all well? If you answer, "Are you trying to live according to the Bible with the assurance of salvation?" More precisely, he is a person who sees salvation and living the Bible as an act. Acts are not perfect. Did the apostle Paul say that there is no body to be righteous by works? For those who believe that such acts of the flesh are righteous before God and that their righteousness has something to do with salvation, salvation can be broken down in the mirror.
To those people, the apostle Paul said in Philippians 3, "I do not consider myself to be caught ... "At first glance, it seems like a great excuse to prove your thoughts. But it is really just an interpretation of the fools' allegiance. In addition to this, the apostle Paul says that he can not be righteous in the flesh, and there is a crucial difference that fools who make excuses for them are those who are constantly trying to be righteous by God in action. Two such different classes, the difference and the righteousness before God, are not the same as the words and the intentions of the two expressions of the same and the same. It is a real idiot because I can not think of this much.
People confuse perfection and perfection. The Bible does not speak or want perfection to man. The existence of a person is perfect. It is too perfect to express and express God's righteousness. Our children are complete and not our children. Our children are perfect as our children, not complete sons or daughters. If you do not understand this, you and your child are in conflict. Such is the integrity. Purification as purpose, meaning, and identity of being is called perfection, and perfection is the perfection of function regardless of identity.
Not as though I had already attained, either were already perfect: but I follow after, if that I may apprehend that for which also I am apprehended of Christ Jesus.(Philippians 3:12)
The apostle Paul said that he did not get what he had already achieved. It is not attained or perfacted. This means that God is still fulfilling the purpose of being that He has given to Him. Our people, even if something is still usable, will take it away when it is moved, and if God remains in one person to express his will, he will live with him. That's what life is for.
There are inkjet prints around us. The owner of the printer buys a printer for printing purposes and installs a cartridge containing ink in it. For the purpose, the cartridge was saved at the moment when it was mounted on the printer for the purpose of printing. And when the cartridges are ordered to print to achieve their salvation, they will consume themselves and print them. And when you consume yourself like that, you will have exhausted all the ink you have. Then the cartridges will be discarded, but those ink cartridges are going to heaven to die for those who believe in Jesus.
People are like this. God made man to show God's image. He is as complete as the owner of the printer when he sees the ink cartridge is perfect for the purpose. And as soon as he realized that the purpose of his life was to live in obedience to God's righteousness that God's purpose was to express God's righteousness, he was saved. And he lives by expressing God 's righteousness by giving his own body like a cartridge that prints and prints while consuming his own ink. That is salvation. Cartridges do not design pictures or characters to print. And at some point, when the consumption of the flesh that God has given us is over, we take off the tents of the flesh and enter into the righteousness of God. What the apostle Paul spoke of is telling this moment.
It is a stolen people, people who believe in God, to understand the words of the Apostle Paul in Philippians, as reasons, excuses, and indulgences that he has not yet been saved. It is stolen. It is trying to conceal his own disposition to act by the action. If man does not see his actions as a standard of salvation, he will be convinced in the moment of obedience to God's righteousness, and live to express his salvation even to the power of his flesh. The apostle Paul is saying that he still does not consider himself apprehended because he is alive and has not fulfilled the desires for the gospel in his heart. It is expressed that he is not yet attained without being perfect, knowing more about Christ and having a heart to express more.
Therefore, if you are fully aware of salvation and have complete confidence, you can not see this as saying that salvation is accomplished, or that there is a certainty of salvation. For those who do not know what salvation is and are still unsure of, and who are still trying, those who are not the beginning of salvation, those who intend to do it, and those who want to be righteous before God in deeds, this word seems like a desire to be stolen to justify their deeds, It is the perfect confession of a person who knows that living in expressing identity during the day of living the nature in one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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