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행동 규범으로 보인다. 반대로 하나님의 의가 삶의 의미와 목적임을 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자기 생명이 되었을 때 그 생명이 표현되는 현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말씀으로 보인다.
‘나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는 말씀도 그렇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세상의 일은 욕심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인 사람에게는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 의를 버린다는 것이고, 복음을 표현함에 있어 자신의 개성이나 성격을 버린다는 말씀인 것을 알게 된다. 복음이 전하는 고유한 하나님의 본성이 점점 더 자신의 삶의 본성과 개성이 되어가는 것을 즐기고 기쁨으로 알고 살아가게 된다.
특히 세상에서의 성공과 육신이 평안할수록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이라고 여기는 신앙의 안목을 가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늘 세상과 다툰다.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목표 달성을 위하여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 성공을 돕는다는 것을 믿지 않는 반면에 자신들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을 빌미로 하나님께 운동장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이 글에서는 <인간의 타락>이라고 했고, 그런 신앙을 위한 교회를 이 블로그에서는 <큰 교회>라고 한다. 그들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아니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의 하나님께 행위로 의로워지겠다고 열심인데, 그것은 남자에게 비키니를 서로 선물하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세상에서의 경쟁에 있어 자신들은 하나님을 힘 입고 있고, 하나님과 한 편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이 어떤 다툼이나 갈등에 있어 정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교회 세습>에 대하여 세상의 여론이 뭐라고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한다.’라고 일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교회를 세습한다는 것은 실정법 상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종교라는 범주가 법적으로 예외적인 혜택을 받는 것이 많은 탓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잘못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동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상속도 달가워하지 않는 시대에 교회를 세습한다는 것이 좋게 보일 수 없는 것이다. 더더욱 교회끼리 정한 법을 스스로 어겨가면서 그러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 나온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교회 조직에 있어 신학을 바탕으로 자리를 보전하는 목사나, 많은 헌금으로 장로가 된 자들의 일에 그런 자격이 없는 자들이 입을 대는 것을 불허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라이선스와 같이 여기는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의 뿌리와 목적과 명분은 결국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세상에서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 과정에서 문제되는 것은 묻어 둘 수 있고, 사람이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니 그럴 수 있다는 논리까지 아전인수 격으로 끌어 들여 정당화한다. 이런 모습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힘을 주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보다 자신들이 더 옳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것에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를 가졌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가지지 못한 자들 앞에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졌는데, 지금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닌다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에 자신들은 의롭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죄인이고, 의인인 자신들의 전도를 받아야 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어이없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자신들이 교회에 다니고 손에 성경을 들고 있다고 해도 미안하지만 그냥 타락한 인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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