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둥병자,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꿇어 엎드리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자신의 병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간청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시니 문둥병이 사람에게서 떠나갔다. 아주 중요한 게 아닐 수 있지만 이때부터는 예수님이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기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전도하신 이후다.
문둥병은 몸의 감각이 없어지는 병이다. 그래서 몸이 썩거나 심지어 잘려 나가도 느끼지 못하는 병이다. 이제는 거의 치료할 수 있는 이 병은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을 느끼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병이다. 하나님께서는 늘 사람에게 그 뜻을 말씀하시는데 사람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면 썩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병이 문둥병이다.
하나님께서는 늘 ‘나를 찾으면 만나리라’ 말씀하신다. 이건 숨바꼭질 같은 게 아니다. 하나님은 숨어 있거나 사람에게 그 존재를 감추지 않는다. 그런데 찾으면 만나리라 말씀하신 건 사람이 마음만 바꾸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의와 뜻을 알 수 있도록 말씀하고 있고, 표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구라도, 언제라도 하나님을 찾으려 하면 만날 수 있다. 단 육신의 성공을 돕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생의 존재 목적을 가지신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자기 하나님을 찾는다. 그래서 늘 말씀하고 계신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 그게 문둥병이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다. 너의 존재 정체성이 무엇이며, 너와 나는 어떤 관계인지를 물으신다.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 여호와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께 늘 무엇을 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육신으로 성경을 지킨 공로를 드리려 한다. 그렇게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 곧 장사하려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느끼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멀어져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심각한 문둥병의 상태가 이것이다.
흥미로운 건 문둥병자가 찾아와서 “예수님이 원하시면…” 자신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며 간청했고,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내가 원한다”고 답을 하시니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둥병에서 회복되는 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에 무감각하지 않고, 민감하게 듣고 순종하기를 바라신다는 말씀이다.
문둥병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병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에게 전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문둥병이 고쳐지기를 원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당연함이 당연하게 느끼는 이유가 육신의 건강이란 관점이어서는 안 된다. 존재의 하나님께서 사람의 존재 목적과 그 목적을 기반으로 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즉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육신이란 형식을 가진 존재로서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걸 예수님이 원하신다는 이해 안에서 당연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께서 고치기를 원하는 문둥병이란 하나님 말씀을 바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의 상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와 뜻을 전하러 오신 분이시니,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상태가 회복되어 언제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반응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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