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 대표적인 죄인이라면 세리와 창녀였다. 창녀야 어느 시대나 죄인의 부류에 넣지만 세리는 꼭 그렇지만 않다. 다만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에 상납할 세금과 무관하게 세리의 재량으로 징수한 뒤 자신의 부를 축적했기에 지배국 로마에 세금을 내는 유대인들은 세리를 매국노로 여겼다.
의가 같지 않으면 밥도 같이 먹지 않는 유대인들의 문화상 세리와 함께 먹는 것, 그것도 세리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먹는다는 건 ’난 이들과 같은 의를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세리 마태와 함께 먹는 예수님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난했다. 죄를 사하는 의로운 자가 죄인과 함께 먹는 것을 비난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죄인에게 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므로 이들의 비난을 일갈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이 짧은 사건은 병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이 전부인 것 같다. 하지만 병자를 고치는 의사가 같은 병에 걸릴 것까지는 없는데, 죄인을 구하러 오신 예수님은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중요하다. 그런 예수님이기에 지금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 취급한다는 것을 아심에도 죄인과 먹고 마시고 계신 것이다.
의인이신 예수님은 죄인을 구하기 위해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셨다. 이건 의롭다면서 죄인과 먹고 마시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다른 하나님의 법이다.
그런즉, 기독교인들이 병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죄인에게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말씀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 세리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과 말씀에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법리가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일반적 상식, 세상의 지식으로 보면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면 건강한 의사가 병자를 돌보듯 의인인 상태에서 죄인을 불러 구원하시면 된다. 이것이 세리와 먹는 예수님을 비난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가치관이다. 그리고 이 가치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곳에서 내려와 보라‘고 외친 사람들의 가치관과 맥을 같이한다.
이 말씀을 단순하게 보면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명제 아래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짧은 말씀 속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법이 그대로 녹아 있다. 자신을 구원받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이 법이 그대로 보이고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같은 과정을 거친 사람이어야 이 말씀 속에 있는 예수님 구원의 법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육신은 우리와 같으나 그 육신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만의 특징이 아니라 우리도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죄인이 되어 육신이 십자가에서 옥합처럼 깨어지니 그 속에 있는 물(말씀)과 피(생명)가 드러났고, 그것을 본 사람이 자신도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해 가진 말씀과 뜻이 자기 삶이 되어야 함을 깨달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죄인을 구하기 위해 의인이심에도 죄인이 되신 것이다. 자신은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니지만 세리, 창녀와 먹고 마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말씀 속에는 죄인들의 자리에 함께하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죄인의 형틀이기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죄인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원이 이루어졌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사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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