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이 밀밭을 지나다 이삭을 자른 일을 두고 바리새인들이 또 시비를 걸어왔다. 안식일에 하면 안 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의 최종적인 답변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이었다.
얼핏 성경 말씀은 행위 규범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성경을 경전으로 삼은 모든 종교가 성경을 행위 규범으로 여긴다. 물론 말로는 행함이 아닌 오직 믿음이라고 말하지만, 믿음도 행위로 가늠한다. 새벽기도회 참석과 같은 행위를 좋은 믿음으로 판단한다는 자체가 행함으로 의로워지는 것인데 눈 감고 아웅 하듯 믿고 있다.
안식일 논쟁은 이같이 행함을 의로 여기는 사람들, 성경을 행위 규범으로 보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성경의 의가 본성이 된 예수님 간의 논쟁이다. 형식이 의로워지면 내용이 의로워진다는 사람과 의로운 내용이 의로운 형식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갈등이다.
안식일 논쟁은 성경을 행위 규범으로 보는 사람의 관점에 대한 말씀
유대인은 일하면 안 되는 안식일에 이삭을 자른 제자들의 행위 자체가 율법을 어긴 일로 보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질적 의미를 말씀하신다. 안식일은 달력의 날짜가 아니라 안식하는 존재인 그리스도로서 사는 사람의 모든 날이라고 답하고 계신 장면이다. 유대인들의 말은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러면 되나?‘라는 말로 바뀌어있다. 안식일과 제자들의 행동이 이 갈등의 촉매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이 유대인들은 성경대로 행하면 의로워진다는 모든 시대, 모든 가치관의 상징이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주일(안식일) 성수한답시고 7일마다 돌아오는 달력의 일요일에 정해진 행동을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이 모습은 어떤 행동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고, 어떤 행동은 주일을 범하는 게 된다는 종교인들의 생각이 녹아 있다. 바로 행위로 안식일을 지키는 신앙이다. 형식이 목적과 의, 곧 내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정통 신앙이 되어 있다. 이것이 성경을 행위 규범으로 보는 것이다.
성경은 행위 규범이 아니라 존재 규범
하지만 성경은 행위 규범이 아니라 존재 규범이고,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말씀이다. 안식일은 일하지 않으므로 지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안식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창조한 목적이 이루어져 하나님께서 그에게 안식하고 만족해야 안식이다. 그런 존재가 되는 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달력의 어느 날이라도 그에겐 안식일이다. 즉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안식일이 형성되므로 안식일의 주인이다. 즉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어느 날이나 그로 인해 안식일이 되므로 그리스도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하는 존재, 그리스도의 모든 날이 안식일이 되므로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
결론적으로 안식일은 특정한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 특정한 날이 아니다. 안식하는 사람에겐 모든 날이 안식일이다. 날이 기준이 아니라 그날을 사는 사람이 기준이다. 그래서 인자가 주인이다. 그리고 피조물인 사람은 혼자 안식할 수는 없다. 주인이 쉬지 않는데 쉬는 종이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안식할 때 비로소 사람도 안식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이 창조의 목적에 부합한 존재로 거듭났을 때,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생명이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안식하신다. 창세기에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결국 한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대로의 사람으로 거듭났을 때 그 사람과 하나님이 안식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거듭난 사람, 그가 바로 그리스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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