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6 – 각각 다른 하나님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사도행전 Date : 2024. 11. 22. 00:02 Writer : 김홍덕

(22:2-29)

바울 사도로 인한 소동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천부장까지 나서서 바울 사도를 격리하므로 사태를 일단 진정시켜야 했다. 그 후에 사도 바울은 천부장에게 기회를 얻어 자기의 회심 과정에 대해 유대인들에게 간증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유대인들은 끝까지 듣지도 않으려 했고 오히려 더 바울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바울 사도가 자신이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는 걸 밝힘으로써 상황은 다소 반전되었지만 그렇다고 석방이 되지는 않았다.

 

바울 사도는 변론을 통해 자기의 모든 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바울 사도의 변심은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라 믿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통할 리 없었다.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율법을 행위로 지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고, 그 행위에 따른 반대급부로 상 혹은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유대인들은 오직 행동과 말로 바울 사도를 판단할 뿐이었다.

 

사도 바울의 하나님과 유대인의 하나님은 달라

 

사람들은 단어가 같으면 뜻도 같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보면 기도, 전도, 봉사, 율법과 같은 단어들은 유대인이나 지금 기독교인들이나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대인과 사도 바울의 괴리에서 보듯이 하나님이라고 부른다고 모두 여호와 하나님인 건 아니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하나님 혹은 여호와로 부르지 않아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라고 부른다고 다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 건 아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불러 복음을 전한다고 간증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을 배신한 배신자에 불과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불렀다고 간증했지만,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이방인을 사랑하지 않는 하나님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교회와 성당 등이 있고, 그곳에서는 모두 하나님을 부르나 그들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부르는 거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평안하기를 구하는 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라면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 게 아니다. 아쉽게도 대부분은 그렇다. 무엇을 기도하는지를 보면 아는데 부르기는 하나님이라 불러도 그들이 믿는 신은 바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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