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7:27 – 44)
로마를 향하는 바울 사도 일행이 탄 배는 결국 난파하게 된다. 백부장이 선택한 선원들의 경험과 지식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린다. 게다가 백부장이 선택한 경험과 지식의 선원들은 자기들만 살고자 탈주를 시도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두를 무사히 구하신다는 위로의 약속과 함께 축사하고 함께 음식을 먹은 군사들은 배가 부서지려 하자 바울 사도를 포함한 죄수들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모두를 안전하게 육지로 인도하신다.
세상의 지식과 경험은 자기 이익을 위한 것
선원들과 군사들의 최우선 가치는 자신들의 안녕이었다. 이들의 모습은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과 태도를 대변한다. 평소에는 이타적이었다가 위기가 되면 이기적으로 변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사람의 이타적 행위도 선한 행위가 가져올 축복을 염두에 둔 것이기에 결국 뿌리는 이기적 소망이다. 또 이타적 행위의 동력은 사람의 신념이다. '그래야 한다', '그러는 게 맞다'라는 생각이 이타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적어도 본능이 그런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아무 일이라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하지만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능>은 다르다. 이 본능은 그 자체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본능이다. 십자가를 지는 게 무엇인지 보이신 예수님의 모습이 그리스도라는 본능의 이타적 성격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구원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심판하자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게 그리스도라는 본능이다. 그리스도는 천국에 가서 복을 받겠다는 신념으로 노력하는 이타심이 아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본능이 자신과 사람을 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십자가를 지는 건 사망이고, 세상에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긴다는 건 곧 패배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한 유대인들의 조롱처럼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 바로 그리스도라는 본능으로 거듭난 사람이 나오는 게 하나님이 세상을 경영하는 유일한 목표라는 사실이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롬 18:19)
높고 위대한 걸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노력으로 세상을 지키고 또 나아지게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기특한 생각에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다. 그건 세상을 사람이 만든 게 아니며, 자기 선택으로 이 세상에 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것도 아니고,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오히려 자기는 그 세상에 속한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작 이 세상을 지키는 건 낮아지는 게 본성인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이다.
경험이나 이기적 시도가 바울 사도 일행이 탄 배에 있는 사람들을 구한 게 아니다. 이들을 구한 건 사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다. 세상을 만드시고 경영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세상에 있는 한 세상은 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을 얻는 것이다. 즉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의인 열 명을 찾으시면 어찌하시려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열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 18:32)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뜻의 수명이 아직 남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자기를 부른 계획이 아직 다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 육신의 삶이 남았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자기 운명을 예견하거나 예지했다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주는 확신이다. 하나님의 뜻인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인은 어지간하면 이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부르신 뜻, 육신이 된 말씀이 내재한 그리스도인과 함께 위험에 처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은혜를 받는다. 사도 바울과 함께 배에 탄 사람들이 여기 속한다. 또 크게 보면 오늘 사람들이 세상을 안녕히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세상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고, 또 그들로 인해 멸망하지 않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 또한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시기를 하나님의 계획 덕에 기회를 받은 것이다.
이건 신앙적 자부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의 세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있어 망하지 않은 세상에서 얻은 귀한 기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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