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권세를 업은 하만은 모든 백성이 자기에게 절하도록 하였으나 모르드개는 절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이 모르드개가 유대인이기에 절하지 않은 것이라 하만에게 고하였다. 이제 이건 민족의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문제로서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니다. 유대, 곧 하나님을 찬송하는 모든 사람의 문제로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앞서 하만의 행태는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와 같은 것임을 설명했다. 아울러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고,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 사탄(마귀)이라는 것 역시 설명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일이 그렇다. 기독교인 대부분은 자신은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질 수 없다고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세상에서 이겨 높은 자리에 올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낮고 천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믿는 신앙이다.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라는 하만은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의 모습 그 자체
절을 한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은 상대의 의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네가 옳다"라는 인정이다. 마귀가 예수님께 세상 만국을 보여주며 나에게 절하면 이 영광을 다 주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껜 "하나님만 섬길 것"이라고 일갈했다. 세상 영광을 주겠다는 말에 절한다는 건 세상의 영광이 영광의 본질이며 사람이 추구할 영광임을 인정한다는 의미기에 예수님께서는 그게 아니라고 잘라 말씀하신 것이다.
모르드개의 모습은 기백 있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르드개로 인해 큰 위험에 빠지게 되는 유대라는 한 민족의 이야기 역시 아니다. 이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모든 인류의 자세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며, 하나님의 뜻이 육신이 된 삶을 살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목적으로 창조된 존재다. 당연히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사와 가치를 찬양해야 한다.
모르드개의 일로 보면 세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건 상당한 핍박을 마주하게 된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가 보여준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면 세상의 권세를 등에 업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아서 당하는 것과 같은 핍박을 당하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의 의를 표현할 존재로 창조된 사람은 하나님의 의와 가치에 순종해야 한다.
이후에 에스더를 통해 이 하나님의 가치를 지키고 순종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볼 수 있다. 에스더는 이걸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와 가치를 찬양하고 순종하는 건 세상의 큰 핍박을 받게 되나 하나님은 그 위험에서 우리를 구하신다고 약속하시는 말씀이 에스더서다.
그렇다면 우리가 순종하고 찬양할 하나님의 의와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다. 우선 세상의 영광이 영광의 본질이니 추구하라는 시험에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순복하라고 일갈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려 십자가에 달리셨다. 우리가 거듭나서 얻어야 하는 새 생명의 본성인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란 게 우리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는 생각(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겠다는 생각)이 왜 사탄의 생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생각은 사탄에게 굴복하는 것이고, 하만에게 절하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하나님의 의와 뜻을 찬양하고 순종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므로 사람에겐 그것 외에 수용하거나 순종해야 할 것이 없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하나님이 사람의 유일한 신인 이유다. 모르드개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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