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즉 영생이라는 명제는 어떤 것인가? 영원이라는 시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그 개념을 알게 되는 것이 영생을 아는 것인가? 아니면 이 육신이 실제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도무지 어떤 것을 생명 그리고 영생이라고 하는 것인가?
영생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다"(요 17:3)라고 말씀하셨다. 즉 영생은 죽지 않고 사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믿는 것은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기독교의 신으로 그 하나님을 다 알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예수 그리스도 역시 믿지는 않아도 알기는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은 것이란 말인가?
안다는 것은 서로가 안다는 것이고, 또한 성경을 기록한 유대인들에게 안다는 것은 지식으로 아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하지 않고, 체휼하고 경험된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상관이 있는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서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서로에 대한 목적과 의과 동일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다르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정치판에서 야당은 대통령을 알고 만나지만 생각이 다르다. 그것을 두고 서로가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 또한 목적 하신 것, 그것이 그 삶에 이루어진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아무리 하나님을 안다고 소리치고 밤새 기도해도 그것은 산에서 낚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영생이라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께서 인생인 나에게 두신 목적, 창조하신 목적 그것을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신 목적을 설명하신 최종적이고 완전한 게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불로초를 찾아서 헤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바로 영생의 길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두신 뜻을 안다는 것이다. 그냥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믿는 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 않는다. 또한 교회에 다닌다고, 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흔히 하듯이 하나님께 자기 육신이 살아가는 문제에 대하여 기도하고, 그 안에 영광이 있다고 가르치는 그런 신앙 안에서 부르는 하나님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이 처한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나 해결하려고 계신 분도, 또 그런 일이나 하시려고 사람을 만드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성품을 나타내려 하신다. 그것을 목적으로 하시고 가장 좋은 모습이 어떤 것인가 결정하신 것이 바로 이 육신을 가진 인간의 모습이다. 바로 많은 종교인들이 이 육신이 처한 문제들을 그렇게 자기 신에게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문제 많은 이 육신이 바로 그 모습이라는 것이다.
늘 문제가 많아서 해결해야 하기에 생각해 보면 이 육신을 가진 것이 너무 불편하고, 또한 이 육신 안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너무 추해서 벗어 버리고 싶고,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처럼 감추고 싶고 부끄러운 이 육신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육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표현하시는 도화지이다. 그 이미지가 나타나야 하는 곳이다. 이 육신의 모든 연약함이 있어야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다 아이언맨 같다면 긍휼이 없다. 사랑도 필요 없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면 된다. 그런 존재들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영생은, 또한 생명과를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육신에 대하여 똑바로 아는 것이다. 그것을 안다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영생인 것이다.
이 영생은 육신이 죽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바로 알아서 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알고 그렇게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영생이다. 그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법과 세계 안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 영원함에 내가 편승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영생이고 생명 나무 열매를 먹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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