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늘의 복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겠다 하셨다.(말 3:10)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다들 세상에서 부자로 살려고 혹은 천국가서 부자로 살려고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또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다고 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관점들은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금전적인 거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십일조에 대하여 하나님께 금전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결정적인 오류는 <하늘의 보화 = 이 세상의 재물>이라는 터무니 없는 공식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재물을 하늘의 보화로 여기시는 분이 아니다. 심지어 사람들도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하며 돈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수없이 인정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늘의 보화가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어이가 없다.
또한 설사 목적이 이 땅에서나 죽어서 천국에서나 부자로 살기 위해서 혹은 하나님것을 도적질 해서 혼나기 두려워서 십일조를 한다고 쳐도 하나님의 조건인 <온전한>십일조는 어렵다. 오늘 업체에 방문해서 점심을 대접 받았는데, 이건 십일조를 어떻게 드려야할까? 나는 업체 사장님이 사주신 밥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장님께 "십일조를 해야하니 음식값을 좀 알려 주십시오 할 수 있을까?" 그럴수도 없지만 만약 그런다면 저는 정말로 성경을 문자로만 알지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읽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만 봐도 적어도 내가 아는 사회 구조상 온전한 십일조를 하기 위하여 자기의 수입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이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십일조의 정체성을 이런 관점에 매몰되어서 논쟁으로 삼는다면 그 또한 십일조를 바로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이런 관점들로 십일조를 보기 때문에 십일조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서 몸에 베인 관습은 아니지만, 유대인들에게 있어 1/10은 전체의 대표성을 띤다고 한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내 자신이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라는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십일조에 대하여 기록한 말라기라는 성경이 십일조를 다루기 위한 말씀이라고 볼 수 없다. 말라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훼손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성경이다.
즉 이는 상한 고기나 가짜 제물을 드렸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사를 주신 목적을 훼손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라기에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제사를 만들어 주신 그 목적은 사람들이 없애 버리고, 형식만 남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의 목적을 도적질해갔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제사는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 앞에 불살라 제물로 드리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표현할 몸이 없으시므로 사람이 그 몸이 되어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에 사용하지 않고, 그냥 제사만 형식적으로 드리므로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누가 성전문을 좀 닫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까지 하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그러므로 십일조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을 드렸다는 증거로서 드리는 제물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규례로 하나님께서 수입의 1/10을 바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1/10을 바치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재물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자신을 하나님을 표현하는 존재로 드리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될 때, 주시는 복을 말하는 것이고, 십일조라는 것은 내 삶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증거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십일조의 본질이다. 1/10을 바치는 것은 형식이다.
그렇다고 형식이라고 무시하면 된다는 것도 아니고 필요없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본질을 통하여 나타난 바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군복을 입어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번 군인이라서 군복을 입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십일조를 드려서 복을 얻는다기 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복 있는 자가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이다.
물론 형식적으로 그 수입의 1/10을 드리는 것도 지키면 좋고 하지 않는 것 보다야 백배 나은 것이며, 또 내용만 따지면서 폐할 법도 아니지만, 그보다 앞서서 해야할 것이 있다면, 십일조를 드리는 자격 있는 삶, 즉 영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