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가 끝나고 다시 사람들이 번성하게 되면서 또 하나의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바벨탑> 사건이다.
Tower of Babel by fimoculous |
바벨탑은 시날 평지에 건축된 탑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에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하여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성을 쌓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건축물의 정확한 정의는 <탑>이라기 보다는 <성>이지만 '쌓았다'는 의미가 강해서인지 보통은 바벨탑이라고 하는 것 같다.
이 바벨탑 사건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면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먼저는 사람들이 성을 쌓은 목적과 방법, 그리고 다음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신 방법 이렇게 두 가지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 날 우리의 삶 가운데도 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으려 한 목적은 <세상에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하여> 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성을 쌓아 하늘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쌓은 성이 하늘에 닿은 사람이다'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을 어떻게 쌓았는가 하면, 그것은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진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람을 단련시켰다는 것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 흙이나 땅은 늘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 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람을 단련시킨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벨탑을 만들기 위하여 진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람을 단련시켜서 그 공적을 쌓아 올렸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면서 이 땅 위에서 뭔가 공로를 쌓으면 하늘이 기뻐하고 감복한다고 믿고 그렇게 신앙을 가져왔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도 늘 적용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존재>의 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어떤 행위나 공적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가 전부이신 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벽기도회를 가고, 금식을 하고, 또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퍼 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하기 힘든 일들, 그런 것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잠이 오지만 새벽기도회를 그리고 철야기도회를 가고, 배 고프지만 금식 기도를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모든 생각들이 바로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드는 것이고, 그런 것이 모이면 천국에서 상급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벨탑을 쌓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언어를 다르게 만드셨다. 이것은 영어, 불어, 스페인어, 한국어와 같은 언어가 달라지게 하셨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같은 나라에서 말을 해도 "말을 못 알아 듣는다"라고 하기 일쑤다. 즉 언어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같은 말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즉 의미가 달라지게 하셨다는 것이다.
언어가 달라지게 하셨다는 것은 말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받아 들였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하나님께 혹은 신에게 공적을 쌓을 때 일치된 의견을 보이지 않는다. 막상 교회만 가도 어떤 사람은 군 선교가 제일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교회학교 교사가 제일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성가대가 최고라 한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중에 어느 것이 최고인가? 하는 하나의 언어에 대한 해석이 여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갈라지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예로 세례라는 것이 있지 않는가? 세례냐? 침례냐? 이것으로 얼마나 많은 교단들이 갈라졌는가?
바로 그런 것이 언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회의가 필요하고, 갈라지는 일이 있고, 흩어짐이 예상된다면 그것은 다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는 것을 막는 장치라는 것을 깨닫고 빨리 돌이켜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을 때, '흩어짐을 면하자'라면서 탑을 쌓았다. 즉 사람들은 갈라지고 흩어지는 것을 면하기 위해서 탑을 쌓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벽돌을 굽듯이 사람을 단련하는 것으로 공적을 쌓는 신앙적인 모임 안에는 필연적으로 같은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갈라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 조금만 다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 적이 있는 일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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