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에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 없다. 하지만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라고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신 부분이 있고, 이를 모든 한국 교회에서 기도의 형식으로 채택해서 기도의 마지막에는 꼭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라는 말을 넣고 있다. 그렇게 기도를 구성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 그것에 대하여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여겨서 이 내용까지 이번 책에 포함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은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든 마지막에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면 그것을 들어주신다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 시행하신다는 데는 어떤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르시기를 “너희가 또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14:13)” 하셨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했을 때 들어주시는 이유는, 아버지가 아들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히 하셨다.
영광의 원어는 Doxa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는 ‘표현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아버지께서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본성을 표현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것은 밥 달라, 돈 달라, 이성을 달라 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아들로 살게 되는 것에 관한 모든 것을 시행하시겠다는 말씀이시다. 그런데 큰교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가난도 해결되고, 병도 낫고, 아들도 좋은 대학 갈 것이라고 가르친다. 정말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신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는 다 아신다.(마 6:33~34) 하나님을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 믿는다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준비안하셨다고 믿는 것은 참 믿음이 없는 것이다. 세상 살면서 육신의 삶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기도해서 얻으려 한다는 것은,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시면서 준비를 덜 하셨군요. 그래서 지금 이런 저런 것이 필요하니 좀 보내주셔야겠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시니 그렇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AS를 요청하는 꼴이다. 그러면서 마치 그래야하는 것을 명시한 계약서를 내밀 듯이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필요에 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 육신에 관한 일을 주관하셔서, 때로는 부유하게도 하시고, 때로는 궁핍하게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다 이유가 있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두신 목적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표현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목적이고,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진 빚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심으로 아들이 되신 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목적이다. 그래서 그것을 위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아들이 되기를 구하는 것과, 그렇게 살기 위하여 필요한 은혜를 구하는 것에 관하여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구하는 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름이라는 것이 바로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구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안에서 그 세계에 필요하고, 그 세계가 목적으로 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사람의 육신의 어떠함에 관하여 우리가 때로 기도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 목적에 관하여,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필요한 것에 관하여 구함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결과에 대하여 늘 순종하여야 한다. 부흥강사들이 말하듯 떼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은 소유와 공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일을 감당 했습니다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큰 상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그건 받으면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더 영광을 받으신다고 한다면, 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복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어차피 상은 1등에게만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 한명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그러니까 하나님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되니 그것은 만민을 위한 복음이 아닌 것이다. 만약 복음이 그런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가신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가 되었어야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표현하신 하나님,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신 자리는 십자가의 자리이다. 이 십자가가 어떤 자리인가? 죄인의 자리이고 발가벗겨지고 손과 발에 못 박히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신 자리가 아닌가?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빚진 죄인이라는 말씀이고, 벗겨졌다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가지는 그 어떤 겉옷, 즉 신분도 나를 구원할 수 없으니 다 벗겨진 자리요, 손과 발이 못 박혀서 묶임은 우리의 손과 발의 모든 공로와 육신의 모든 행위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자리요, 머리에 쓴 가시관은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모습과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리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표현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로 사는 빚을 진 자입니다 고백하는 것이요, 우리의 육신의 어떤 것으로도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리, 그리고 그것인 인생의 운명이요 목적이요 정체성이라는 고백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표현한다는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자리라는 것이다. 바로 그 자리, 그 안에서 구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요, 그것을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들어주신다는 말씀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상 들어주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을 육신의 필요를 구할 때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신 보증서처럼 여겨서 아무 때나 사용하고 있는 것은 <기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며, 주님이 기도를 가르치신 목적도 모르는 것이며, 주기도문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생각의 세계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정한 자리를 떠난 것, 곧 죄(하말티아 : 과녁을 벗어난 자리)의의 자리이며, 그 안에서 어떤 것을 해도 하면 할수록 다 죄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설사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해도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하여 기도한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곧 소유와 공로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고백하는 세계 안에서 구하는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형광등이 조명을 밝히기 위하여 주인에게 요구하는 모든 것은 다 들어주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는가? 그것이 기도고 그것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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