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2569

(치유) 부활 (3)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치유 Date : 2013. 5. 16. 14:50 Writer : 김홍덕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기에 가나안에 들어갔듯이 한 개인의 신앙도 피라미드의 법이 있는 세상을 떠나는 죽음을 맛보아야 한다. 큰물을 건너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례이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물에 잠겼다 나오는 것을 말함인데, 이것은 물에 들어가기 전과 물에서 나온 다음의 삶이 다르다는 것을 증거 하는 예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물에 들어갔다 나와도 삶이 달라진 것이 없다면 세례를 받은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즉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해도, 그 마음 안에 예수 믿어 세상에서 주는 복을 받겠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이다. 무늬만 세례인 것이다.





이렇듯 세례는 그 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다른 것이다. 홍해를 건너기 전의 이스라엘 백성과 건넌 다음의 이스라엘은 다른 백성이듯이 각 개인의 신앙도 세상의 법에 대하여 큰물에 잠겼다가 나온 것과 같이 죽은 자 같이 된 사람은 신앙 안에서 세상의 형식에 대하여 의를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서 사람의 형식에 관한 재물이나 지위나 예의 같은 것이 있어야 좋은 신앙이라고 여기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가치 기준이었는데,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 또 다시 그것을 추구하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다시 건너 애굽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곳에는 죽음 밖에 없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이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이 가진 가치관과 다르게 사는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세계이고, 이 세계에 대한 태초가 열린 것이며, 빛이 비취어 어둡던 눈을 뜨게 된 것이며, 중풍병도 귀신 들린 것도 아닌 모습으로 온전히 하늘의 뜻이 사람의 삶에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인 것이다. 이것이 새 생명인 것이다. 단순히 부정하던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고 새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례를 받아도 가치관은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신앙에도 교회 생활에도 그런 가치관으로 치장한 것이 무늬만 세례이듯, 인생을 보는 가치관과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이 교회만 다닌다고 새 생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삶을 보는 안목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주제별 성경 보기 > 치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유) 부활 (5)  (0) 2013.05.20
(치유) 부활 (4)  (0) 2013.05.20
(치유) 부활 (2)  (0) 2013.05.10
(치유) 부활 (1)  (0) 2013.05.09
(치유) 죽음 (3)  (0) 2013.05.06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마태복음) 1:1-17 다윗의 자손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3. 5. 14. 17:59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개인의 구원 그 자체에 머물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계보를 소개할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다. 즉, 한 개인의 신앙이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열리는 태초가 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다윗이 왕이었던, 다윗이 가진 마음과 의가 나라의 의가 되었던 것 같이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의로 가진 사람들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의 의를 의로 삼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이 마태복음에는 유독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이 많고, 또한 이 땅 위의 하나님 나라인 교회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왕이요 제사장이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다. 왕이 있다는 것은 나라와 백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나라와 같은 조직체와 정치가 필요한 나라를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시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나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기 안에서 시작된 사람들이 그 백성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시작이, 자신에게 태초가 하나님인 사람들이 모인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땅의 교회다.


이 교회는 사울이 왕인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사울과 같이 세상적인 경쟁력이 이기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나라는 다윗과 같이 그 육신의 아버지 조차 내어 놓기 꺼려하는 그런 모양을 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그런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것이 다윗이 왕인 이스라엘의 모습인 것이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과 같이 세상적인 경쟁력을 가진 골리앗을 하나님의 이름(생명)으로 이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왕인 나라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교회들이 교회 건물이 세상의 건물보다 좋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면서 다투듯이 좋은 건물로 변하고 있고, 교회 안에 세상에서 경쟁력 있는 지위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어리석음도 모자라서 교회 안에서 그들을 그 지위 하나로 인정한다. 재산의 정도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은 이제 고전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가 그런 모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사울의 나라이다. 사울이 다른 사람보다 어깨 하나 더 있을 정도로 경쟁력 있는 사람이었듯, 교회도 세상의 경쟁력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고 지칠 줄 모르고 그것을 향해간다. 하지만 그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 단언코 교회가 세상의 경쟁력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이미 버림 받은 교회이다. 그런 교회는 세상의 조직체일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게 될 때 시작되는 세계고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고 그것을 누리는 세계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인 것이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마태복음) 1:1-17 다윗의 자손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3. 5. 14. 10:44 Writer : 김홍덕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의 세계라 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믿음이라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며, 수동적인 것이 믿음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시작되는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세계라는 것이다. 세계라는 것이 혼자일 수는 없다. 뭔가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의를 지향하는 것을 나라라고 하고, 세계라고 한다. 수학의 세계라고 한다면 수와 논리라는 의를 지향하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나라라는 것 역시 민주주의와 같은 하나의 의를 표방하여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 왕의 자손이 이루는 세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이방 나라의 왕을 보고 부러워하여 하나님께 왕을 세워 달라고 했다.(삼상 8장) 이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옳다고 여기지 않으셨지만 백성들의 요구를 들으시고 왕을 세웠는데 그 초대 왕이 사울이다. 이 사울 왕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어깨 정도에 밖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한 눈데 보기에도 뛰어난 용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서 육신으로서 경쟁력이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왕의 정체성이 사울과 같이 사람들 중에 위대함으로 경쟁력이 있는 왕이 나타나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가 옳지 않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 주셨으나, 사울 왕은 결국 사람이 생각하는 위대함을 좇아가다 망하고 만 것이다.


이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는 세계라 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사울은 그렇지 않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함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말렉을 치고 난 다음에 모든 것을 죽이라고 한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좋은 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좋은 양과 염소를 남겼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된다.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순종이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7)


사울 왕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와 나라의 왕이 아니었다. 즉 사울과 같은 생각을 가진 왕이 통치하는 나라,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의를 그 나라의 의로 삼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볼 때 좋다고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공동체의 의로 삼으면 그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교회가 추구하는 발전이라는 것이, 사람이 볼 때 좋은 건축물을 가지는 것과, 사람이 이긴 것,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수의 많음이 교회의 발전이라 여기고 그것이 하나님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회나 공동체는 사울이 왕인 나라요 세계일 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반면에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사울과 같이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으로 왕이 된 것이 아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집에 가서 그 형제들을 모았을 때,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는 다윗을 부르지도 않았다. 즉 아비가 볼 때에도 어디 내세울 것이 없다 싶은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 그런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나, 또한 사람이 좋다는 것을 다윗을 가졌기 때문에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