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죄는 대부분 사람의 행동에 관한 규범에 따른 것이다. 우리나라 형법에도 거의 모든 형법 조항들이 그런데 이러한 것은 동기만으로는 죄가 되지 않는다. 형법이란 것이 행동에 관한 규범이므로 분명한 행동이 있을 때 죄가 성립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절도라는 범죄가 성립하려면 훔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범죄가 성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 어떤 물건을 훔쳤을 때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실재적인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그렇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간첩죄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범죄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도 간첩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가 그것도 아주 중범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존재의 법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간첩은 존재 자체가 범죄인 상태이기 때문에 선한 행동을 하고, 또 기부를 많이 하고 사회봉사를 해도 오히려 하면 할수록 죄가 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존재가 어떠냐에 따라 죄인이 되는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의 가장 기본은 이 존재의 죄를 말한다. 존재의 죄라는 것은 대한민국이 추구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으로서 가지고 있는 의와 법에 동의하는 존재인지 아닌지를 기반으로 간첩이 정의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의와 뜻에 합당한 사람인지 아닌지가 바로 존재의 죄인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왜 이것이 먼저이고 중요한 것이냐 하면, 존재가 정해지고 나야 그 행동이 적법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행동만으로 단순하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로서 어떤 행동을 하였느냐? 하는 것이 기준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보고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이미 살인한 자'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는 간음한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 사람들이 행동만으로 죄를 정하는 율법적인 관점에서 살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보면 행동하지 않았기에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마음을 꾸짖으시는 것이다.


율법이라는 것이 마치 지금의 형법과 같이 마음에 어떤 것이 있더라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면 죄가 되지 않으므로 자신들이 선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행위보다 그 존재가 죄인인지 아닌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율법은 그렇게 존재의 어떠함에 무관하게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간수하면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동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주신 것에 반하는 믿음을 책망하신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은 아무리 행위로 공적을 쌓아도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의인의 기준이 사람의 행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반드시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행동도 무관하게 존재만 바로 서면되느냐?, 살인도, 강간도, 절도도 무관하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셨듯이 하나님 앞에서 그 존재가 회복되면 행동은 따라 오는 것이기에 그런 일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어릴 적부터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 까지 술을 멀리하고 잘 마시지 않았다. 회사 회식 때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안주만 먹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성경에 기록된 이 복음이 행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때는 술을 제법 마셨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생각은 이랬다. '사람 마시라고 만든 술을 마시는 것이 왜 죄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술은 마신다고 죄가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술은 마셔도 되고 안 마셔도 되는 하나의 음료일 뿐이다. 그것이 죄가 되고 되자 않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러 술을 마시러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이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자신을 제어한 것과 같은 목적이 있을 때만 아니면 술에 대하여 특별한 개념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일상에서는 그저 건강상의 이유로 또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면 술을 마시지 않지만, 또 누군가 나와 사귀기 위하여 술을 한잔 하자고 하면 특별히 금하지도 않는다.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를 이어가면, 하나님 앞에서 죄는 행동에 관한 규범이 아니다. 사람이 행동으로 범하는 죄는 하나님과 상의할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에 관한 것이다. 왜냐하면 행위는 <세상의 법> 그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요한 일서에서 하나님 앞에서 고백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죄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행동으로 지은 죄를 고백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목적을 잊고 산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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