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문안하므로 빌립보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문안은 많은 편지에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고 사도라는 것, 그리고 수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라는 것, 그리고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랜 시간 자신의 사도됨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의 다른 성도들이 고약해서가 아니라, 바울 사도가 바울이기 전, 사울이었을 때 한 일이 너무 임팩트가 강해서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을 선언하고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요 종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편지를 기록했다는 것은 이 편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곧 정체성을 가진 편지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수신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편지를 수신한다는 것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신이 이 서신서를 읽고 외우기까지 한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이 편지의 수신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면서 겪는 문제와 필요를 예수님께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고 믿고 기도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어디에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서신 모든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서신을 이해하는 것, 우리 자신이 그의 편지 수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울 서신, 성경에 많이 나오는 이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씀은 공간적으로 조직적으로 어디에 속했는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사과라는 것은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것이나 아직 출하되기 전 과수원에 있는 것이나 주스가 되기 위해 공장에 있는 것이나 다 사과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그 정체성이 같아서 어디에서 살든지, 어떤 시대를 살았든지, 어떤 피부색으로 살았든지, 세상에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살고 있든지 그 삶의 정체성이 예수님과 같은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말씀입니다. 삶의 목적과 의미가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
그렇다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으며,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 그와 같은 것이지를 아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고, 그 정체성이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면 제 아무리 “주여! 주여!”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몸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어림도 없는 세계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생각합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이루어내신 분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으로서 해결 할 수 없는 삶의 문제를 만나면 예수님께 해결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이 그 생각을 증명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생각과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모습은 이중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모습과, 십자가에 끌려가는 자기 자신조차 구하지 못하는 모습, 이렇게 두 가지의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중에서 어느 것이 예수님의 본질적 정체성인지, 우리와 같은 것이 어느 것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아무리 분명하게 알아도 만약에 우리가 같아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고 말씀하는 모든 말씀은 나와 상관없는 그림의 떡과 같은 자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 중에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다름 아닌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해결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좋은 믿음인 것 같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기준이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장에서 이것을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사람과 예수님이 공통적으로 가진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두 가지 정체성, 기적을 행하시는 것과 십자가에 끌려가시는 것 중에서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행여 사람 중에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공통적인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예수님의 기적은 이 블로그의 ‘치유’를 참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끌려가신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법리, 곧 기준은 우리와 같이 그저 평범한 육신을 가진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관, 위로 올라가야 이긴 자가 되고 선한 자가 되고 의로운 자가 되는 그 가치관으로 볼 때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예수님, 땅에 와서는 가장 낮은 자들과 의를 같이하여 먹고 마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도저히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수 없었기에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승리의 기준을 맞추어 살아 보려 하면 어느 순간 패자가 되고 죄인이 되어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돈으로 이긴 자가 되려고 하면 어느 순간 돈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돈이 없어 죄인이 되고, 권력을 가져 이긴 자가 되려 해 보면 또 어느 순간 패자(죄인)가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이겨보려 하면 늘 충돌하고 분쟁이 나고 그러다 죄인이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런 우리 모습의 총화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예수님께서 지셨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인정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난 것과 같이.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이긴 자가 되려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가치관으로 이긴 사람, 그 누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상식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존재 정체성과 같은 것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나신 십자가는 승리의 자리가 아니라 죄인의 자리, 패배자의 자리였는데 어떻게 세상의 가치관으로 이겨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가치관에 의해서 죄인이 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죄인이 된다는 것을 알고 그 법 아래 죄인이 되는 것에 순종할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세상의 가치관으로 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세상의 가치관, 또 자기 의나 자기가 아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앞에 죄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죄인이 되면 예수님께서 육신을 십자가에 드리심과 같이 우리도 육신으로 수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기 화장실을 사용하고 치우지 않듯이 자기 맘(의)대로 행하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육신으로 수고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수고하는 것이 바로 죄인이 되고 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의대로 사는 사람과 그 의대로 산 사람의 주장과 행동으로 발생한 수고를 감당하는 사람 둘 중에 누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겠습니까? 그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1: 1-2) Paul's Apostle's Greetings (2)
The Apostle Paul is starting Philippians because he salutes the Saints of the Philippian Church. The text of the apostle Paul has a similar structure in many letters. He is the servant of Jesus Christ, the apostle, and the recipients of the brotherhood in Jesus Christ, and the structure of grace and peace.
The Apostle Paul did not acknowledge his apostasy for a long time. It is not because of the nastiness of other saints of that age, but because what Paul did when Paul was an apostle, Saul, was so powerful. And if there is one thing, it is also because of preaching the Gospel to the Gentiles. So he always declared himself to be the apostle of Jesus Christ and wrote his epistle.
The apostle Paul declared himself to be the apostle and servant of Jesus Christ and wrote a letter that this letter is the letter of Jesus Christ, the identity. In other words, Jesus is the Word. That is why today we receive this word in the Word of God.
Above all, the letter writer clearly declared the receiver of Jesus Christ as the saint in Jesus Christ. In other words, to receive this letter is to acknowledge that you are a person in Jesus Christ. On the other hand, if you read this epistle and even memorize it, then you are not the recipient of this letter unless you are in Jesus Christ.
(In Jesus Christ)
If so, where does it mean to be in Jesus Christ? Does it mean people who go to church? Or do you say that you have faith that if you pray to Jesus for the problems and needs you experience in the name of Jesus, you will hear and pray and believe in Jesus, you will be saved? Where is it to be in Jesus Christ?
The Apostle Paul often used the phrase "in Jesus Christ" throughout his letters.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e Epistles of Paul, to know this in order for ourselves to be recipients of his letters.
It is not about where Jesus belongs spatially and systematically in the Pauline Epistle, which is often mentioned in the Bible. This is a question of whether you have the same identity as Jesus. Apples are things that are in our refrigerator, yet in the orchard before they are shipped, but in apples in the factory to be juices.
Just as Jesus is in Jesus Christ, his identity is the same as Jesus, so no matter where he lives, what time he lived, what color he lived in, or what power he lives in the world, It is a saying. The purpose and meaning of life is to become a person in Jesus Christ when he becomes a person like Jesus.
(Jesus' identity)
So now being in Jesus Christ is a question of what kind of identity Jesus has and what his identity is. If you know Jesus' identity and that identity has become my identity, then that person is in Jesus Christ. If it is not so, then no matter how I say, "Lord! Lord! "Is not even a person in Jesus Christ. Moreover, the world is a world without a person going to church alone.
Many people think of Jesus as a different person from us. We believe that we have accomplished what we can not do. When people meet problems of life that they can not solve as their own, it proves the idea of praying for Jesus to solve them. If so, can a person with such a thought and faith have the same identity as Jesus?
Jesus' appearance on earth may seem to be a double. Because he showed me two things, one with miraculous power and the other unable to even ask himself to be crucified. The problem is that we need to know which of them is the essential identity of Jesus, and what we are like. No matter how clearly we know Jesus' identity, if we can not be equal, it is just a picture of the bread. Then all the words that say "Jesus Christ" will be the same place as the bread of pictures that I do not care about.
As I mentioned above, I want you to solve what you can not do if it is the biggest reason why people believe in Jesus. This seems to be a good faith, but the reality is different. The fact that Jesus came to this earth is itself a standard that is already fitted to the power of man, not Jesus. The Apostle Paul speaks this clearly in Philippians 2.
The fact that Jesus came to this earth is to make people and Jesus know that they have a common identity. Among the two identities of Jesus, doing miracles and being dragged to the cross, man can be dragged to the cross. There are some who do miracles, but it is not for common, for all, for all mankind. (See Jesus' miracle in the 'healing' of this blog.)
Jesus' appearance on the cross is our appearance today. The judge who crucified Jesus, the standard, is just because Jesus, like us, has claimed to be the Son of God. The value of the world, Jesus, who came down from heaven to earth in view of the values of being a winner, a good and a righteous person, It was crucified because it could not be recognized as.
The image of Jesus is like ours today. If we try to live up to the standard of victory that the world wants, we will find us who become losers and sinners at any moment. If you try to be a winner with money and you meet someone who has more money at any moment, and you become a sinner because you do not have money, you become a loser (sinner) if you try to be a winner of power.
Moreover, in every corner of our daily life, we are always in conflict, conflict, and sinning to win by what we consider to be right. Such a sum of ours is the cross. The fact that Jesus took the cross means that our life is like that. And when we acknowledge it, the image of God is revealed and we are revealed to be the Son of God. Just as Jesus was revealed as the Son of God on the cross.
People want to be winners of world values. But the glory of God does not appear through anyone who has won by the values of the world. It is not the glory of God that glorifies God at the awards ceremony. The glory of God is to reveal the identity of God's being. The cross that Jesus revealed as the Son of God was not a place of victory, but a place of sinners, a place of losers. How will the glory of God be overcome by the values of the world? It can not be.
Therefore, being in Jesus Christ is in Christ when we are obedient to being a sinner under the law, knowing that we are sinners in the values of the world, just as Jesus is a sinner by worldly values.
Because being such a sinner through the values of the world is that the people we meet in our lives become sinners before the values of the world, and claiming that what they know or know is right. When we become sinners, we have to work in the flesh just as Jesus gave the flesh to the cross. If someone does his / her own use of the toilet and does not remove it, someone else must work in the flesh. To do that is to be a sinner and a loser.
Who will bear the glory of God in the cause of the sufferings caused by the claims of the living and the living? He is the one who is in Jesus Ch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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