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살아 있어야 하나님께 영광된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더 얻은 수명 15년 동안 잘 한 것이 없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죽는다는 통보 이전에 히스기야 왕은 아주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살아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옥에 갇힌 바울 사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옥에서 나와서 복음을 전하고 빌립보나 다른 교회의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런 운명 앞에서 바울 사도는 어느 것이 자신의 운명이 될지 모른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것이라도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일이며, 심지어 죽는 것도 유익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좀 오래된 드라마 <정도전>에서 실권을 잡은 정몽주로 인하여 죽음을 앞두고서 절친인 정몽주와 정도전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습니다.(드라마 '정도전' 38화) 그 장면에서 정도전(조재현 분)은 자신이 꿈꾸는 나라는 자기 세대가 아니면 그 다음 세대에 그 다음 세대가 아니면 또 그 다음 세대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꿈꾸는 나라는 온전하고 진리이기 때문에 언제가 되었던 실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그래야 합니다. 정도전이라는 한 개인이 가진 이 세상의 나라에 대한 믿음도 그 정도인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와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그 정도의 믿음도 없다면 창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꿈꾸는 나라는 진리기에 자신이 아니어도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던 정도전과 같이 하나님의 의와 뜻도 오늘 내가 아니라도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정도는 믿을 수 있어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나 전도사와 같은 사람들은 더합니다. 또 나름 말씀에 대하여 계시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스포츠계에 흔한 말 ‘팀보다 위대하 선수는 없다.’는 것과 같이 한 개인 안에 정말로 대단한 복음의 비밀이 있어도 그 삶은 복음을 유익하게 하는 도구이지 육신의 삶 자체가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은 어느 누구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그 형상을 표현하기 위하여 존재하므로 그 존재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죽는 것도 유익한 것입니다. 목적 안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기 의로 ‘하나님을 위하여’ 죽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분명히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그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삶이 초라해지거나 때로 죽게 되어도 복음은 유익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삶이 초라해지면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이라고 하고 죽게 되었으면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삶이 삶의 본질이고 복음의 본질로 착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육신의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육신이 세상에서 하는 일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질이고 복이고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적 안에서는 다릅니다. 휴지는 더러운 것을 닦아내는 것에 사용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휴지는 더러워질 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휴지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유함을 하나님의 복으로 아는 것은 휴지가 진열장에 잘 모셔져 있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있으면 좀 먹어서 쓰이지 못하고 태워질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분명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죽게 되어도 아니면 석방되어 복음을 전하게 되어도 다 주를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기에 어느 것이라도 다 복음에도 또 자신에게도 유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롯의 두 딸과 같은 믿음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은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마음속에는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말을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해야 살 것이라는 복선을 가지고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 어린 양이 있을 것이라도 생각했겠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에게 자신의 육신이나 아브라함에게 이삭이나 다 그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주인이시기에 주인이 하시는 일에 순종한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때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신을 믿는 제가 이렇게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도와주십시오!”라는 것과 같은. 그것은 얼핏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일 뿐입니다. 내 삶이 하나님께 완전히 속한 것이라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바울 사도가 보여주는 이 마음, <죽는 것도 유익>이라는 이 마음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세상과 우리 삶의 주권을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우리의 삶의 모양과 형편이 어떻게 되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적 안에 자신이 있다면 자신이 어떻든 자신의 삶은 다 유익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목적대로 쓰일 때 가장 유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는 것도 유익>이라는 고백은 그것을 알 때 나오는 고백인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1: 12-30) It is also beneficial to die.
Many people say that they must live to do glorious things to God. But when you see Hezekiah king, it is not necessarily true. It is the life that God has earned more than 15 years. Before he was told to die, King Hezekiah was a great king. Then it would be better if such a person were alive, but it was not necessarily.
There are two things that can happen to the apostle Paul, who is now in prison. One is to be killed and the other is to go out of prison to preach the gospel and to associate with the saints of Philip Von and other churches. In the face of such a fate, the apostle Paul says that he does not know which of his fate will be. And whichever it is, it is confessed that Christ is honorable, and that even death is beneficial.
There is a scene where Jung Mong-joo, who is in charge of Jung Mong-ju, who is in the old drama "Jung Do-Jeon" In this scene, Jung Do-Jeon (Cho Jae-hyun) says that his dream country is not his generation, but the next generation or next generation. The country in which he dreams is perfect and truthful, so he shows that he believes that whenever he is, he can not but be realized.
The same is true of faith in God. It is also a belief in the kingdom of this world that an individual who is called Jung Do-Jeon is very concerned, but it is embarrassing that those who believe in God in the world made by God do not have that much faith in the work of God's righteousness and will. If we are to believe in God, we must be able to believe that God's righteousness and will can not be fulfilled even today.
But people think that they have to be God's work. People like pastors and evangelists do more. And so are those who think that there is revelation about their Word. But even if there is a truly great gospel secret in one individual, as in the sports world, "there is no player above the team," that life is a tool for benefiting the gospel. The life of the flesh itself is not the essence of the gospel.
Therefore, it is beneficial for man to die for the sake of his being, because God exists to express his image without exception. It is in purpose. Even if he died for his sake in his righteousness, God would say that he does not know the person. If the purpose is accomplished in the purpose of God, the gospel is beneficial even if life becomes poor or sometimes dies.
People say that if life is choked, God punishes them, and if they die, they will repent. It is the life of the flesh that is the essence of life, and that is the nature of the gospel. They are praying to God for the food of the flesh, for the dress, and for the work of the flesh in the world. Because it is the essence, blessing, and I think it is God's work.
But it is different in purpose. Tissue is used to wipe dirty things. Yes, it is beneficial when dirt is dirty. Because it is the purpose of the rest of the paper. To know the riches of the flesh by the blessing of God is to think that it is good that Hajime is well taken in the display case. However, if it does so, it will be burned without eating.
The Apostle Paul is a person who clearly knows his purpose. That is why I knew that whatever I die, whether I am dead or released, I will be used for the Lord, and that it is of benefit to me, both in the gospel and myself. This is important to be our story today. The same faith as Lot's two daughters, that I should be, is not faith.
And a mind like Paul is impossible without absolute faith and obedience to God. Would the apostle Paul have a double mind that he would live if he had a heart to live in his mind but did not care what it was? Would Abraham think that there would be a lamb when he offered Isaac? Not to Paul, but to his body, to Abraham, or to Isaac. Because his master was God, he was obedient to what his master did when he was the master.
People sometimes pray to God this way. "God! Would not I who believe in you be glorified in God? So please help! " It seems to rely on God at first glance, but it is arrogance that God does not admit to be his master. The greater the mind that my life belongs completely to God, the more this heart of Paul's apostle, the "dead and profitable," becomes his own. It is not without the mind.
As we acknowledge the omnipotence of God and the sovereignty of the world and our lives, the more we recognize, the more the shape and condition of our lives will be in God's will for the purpose of God. And if you are in that purpose, you will know that whatever you do, your life is beneficial. What exists is the most beneficial when it is used for whatever purpose it is. The confession of "dying is beneficial" is a confession that comes out when we know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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