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원수에 관한 말씀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것,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께 원수가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바울사도는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 십자가와 원수인 사람들의 끝은 멸망이고, 그들의 신은 그들의 배며, 그들의 자랑은 부끄러움이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우리는 여기서 어떤 것이 그리스도 십자가와 원수가 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이 자기의 하나님인 사람,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하나님과 신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는 좀 다릅니다. 하나님은 대문자 God를 사용하고, 일반 신들은 소문자로 god이나 gods(복수)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신 신은 배(belly, 육신의 배)가 신이라고 할 때 이 ‘신’을 ‘God’, 즉 하나님이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은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상은 자신의 배(belly) 곧 자기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는 이를 하나님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오늘날 신앙인들의 숨겨져 있지만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다른 것 볼 것 없습니다. 자신들이 기도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면 누가 유익해지는지 생각하면 됩니다. 기도의 내용들은 모두 자기 육신 곧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인데, 교묘하게 그것이 이루어지면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는다는 속임수로 자신과 하나님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기 육신의 아들이 시험에 합격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기도하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이 블로그에서 늘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라고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울사도는 그리스도 십자가와 원수가 되는 일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신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십자가와 원수가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땅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땅이라는 것은 세상입니다. 또한 사람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잘 되는 것, 육신이 사는 세상의 기준으로 육신이 잘 되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하나님께 자기 육신의 삶에 관한 필요와 바람을 기도하고 바라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땅의 일인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결국은 멸망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 생각의 영광은 다 부끄러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육신을 중심으로 살고, 육신이 잘 되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느 순간 허무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삶은 살다가 어느 날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그 공허함은 문제도 아닙니다. 그렇게 산 삶은 하나님이 외면하는 삶이라는 궁극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의 신은 자기 배, 곧 육신의 일이나 세상의 기준에서 성공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자기 삶의 본질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이신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생이 무엇을 신으로, 하나님으로 알아야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땅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 곧 하늘의 뜻을 생각하고 그 하늘의 뜻이 자기에게 이루어지도록 순종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존재의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생이 세상의 가치기준에서는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처형되듯 죄인이 된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고, 하나님이 뜻하신 것을 위하여 육신을 드려야 함을 보이신 것입니다. 육신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이고 소비재라는 것을 보이신 것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십자가의 도와 반대로 육신을 목적으로 알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육신이란 유일하니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신 뜻이 무엇인지 보이신 것이기에 그 십자가를 보고서 세상의 기준으로 사형수가 된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자신의 모습이자 하나님 아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자는 자기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육신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림과 같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것이 자기 육신을 소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세상의 가치 기준에서 의하여 죄인이 되신 분이십니다. 위로 올라가야 선하고 성공하는 것이라는 것이 세상의 기준이고, 그 기준에서 이겨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는 것이 세상의 생각, 곧 땅의 생각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세상의 기준 앞에서는 언제나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육신의 정체성, 우리 존재의 정체성, 세상의 가치기준과 우리와의 관계를 역으로 행하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믿어서 세상에서 성공하고, 육신의 일이 잘 되는 것이 복을 받는 것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이 바로 바울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 십자가와 원수가 되는 것>인 것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3: 17-21) Christ the enemy of the cross
The Bible has many words about enemies. Most say that God's thoughts are different from those of God, and that the thoughts of the flesh are enemies to God. Among them, the apostle Paul tells the saints of Philippi that he is the "enemy of the cross of Christ." The apostle Paul tells us that the end of those who are the Christ's cross and the enemy is destruction, their gods are their beloved, their pride is shame, and they think of earthly things.
Whose end is destruction, whose God is their belly, and whose glory is in their shame, who mind earthly things.) (Philippians 3:19)
We can see what is here to be the Christ's cross and the enemy. It is the enemy of the cross of Christ, who is his God, and who thinks of earthly things, to fill his ship.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English word for God and God in the Bible is somewhat different. God uses the uppercase God, and common gods use god or gods (plural) in lowercase. But here, when the belly is belly, God uses this God as God.
This is what they believe to be God, but the reality is their belly, self-desire. That is to say, knowing God as the one who fulfills what he wants. This is in fact a hidden but essential form of believers today. I can not see anything else. You can think about who is benefiting if they do what they pray for. The contents of prayer are all filling their own bodies, their vessels, and if they are cleverly done, they are deceiving themselves and God with a trick that God is glorified because he is made by praying to God.
It is like praying that the Son of his flesh who believes in God will be glorified if he passes the test. This is what I say on this blog: "If you succeed in the world, you will be glorified in God." This is said to be the work of Paul the apostle and the cross of Christ. It is not the will of God to be done to himself, but that it is God's will that his body will be well, and that if he takes his hypnosis and fulfills it, the will of God will come true.
It is also to think of the work of the earth. The earth is the world. It is also people. To be successful in the world, to pray for the need and the desire for the life of the flesh, and to pray for God's will Is the work of the earth.
It is said that the end of this thought is destruction, and the glory of that thought is all shame. At some point, it is absurd to think that people live in the center of their bodies, and that the body is good, as the glory of God. So one day, I feel empty. Of course that emptiness is not a problem either. There is a ultimate problem that life that lives like this is a life that God turns away from.
The God of being of man is not in the success of his belly, the work of the flesh, or the standards of the world, but the obedience of God's righteousness as the essence of his life. The place where I showed it is the cross. On the cross, Jesus showed us what life is to be God, God to know, and what to think and live. It is not the work of the earth, but the thought of the purpose God made for himself, the will of heaven, and the obedience of the will of the heaven to be done to him. It is then that the god of being becomes God of the Lord God.
The cross of Christ has shown that life is a sinner in the value standards of the world, being crucified on the cross, sinful, and showing that the flesh is to be given for what God means. It is the event of the cross of Christ that showed that the body is not a purpose but a tool and a consumer. Therefore, the person who thinks of the work of the earth that thinks that it is the work of God to know for the purpose of the body as opposed to the help of the cross and to succeed in the world becomes the enemy of the cross of Christ.
The cross is the flesh, and the god has shown what the Lord God has made of Himself, so that He saw the cross and saw that Jesus, who was a prisoner of the world, is the image of Himself and the Son of God. He who believes in it does not fill his belly, but that his flesh is consumed by his body to show the righteousness of God just as Jesus carries the flesh on the cross.
Jesus, who is also crucified, is a sinner by the standards of the world. It is the standard of the world that it is good and successful to climb up to the top, and it is the thought of the earth, the idea of the earth, to be the Son of God to overcome it. It is to acknowledge that the way of the cross is always a sinner before the standards of the world. To think about it is to know the intent of the cross.
Therefore, when we consider that Jesus is a blessed person who believes in God and succeeds in the world, and that good works of the body are blessed, by doing the opposit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flesh identity, the identity of our being, All that is said is that the apostle Paul is saying, 'Being the Christ is the cross and the en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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