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시민권은 당연히 하늘의 의를 자신의 의를 받아들일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이민 가는 사람이 미국의 의인 미국 헌법을 수용하지 않는데 시민권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하늘의 뜻’이 ‘땅(흙으로 지어진 사람)’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시작은 사람이 하늘의 뜻을 순종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작된 사람이 바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게 구원의 시작이기도 한 것입니다.
구원이 시작되고, 하늘의 시민권을 얻었다는 것은 그 시작으로 비롯된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삶은 그리스도의 의가 자기 본성이 된 사람의 삶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행동이 있고, 말이 있는 실존적인 것입니다. 그 삶과 행동과 말이 바로 그 사람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예수님 안에 있어서 그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뜻인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로워지려고, 구원을 받으려고 그렇게 애썼던 행동들이 속사람 안에 하늘의 시민권, 구원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이 육신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서 의로워지려는 것과는 반대입니다. 살다가 보니,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성경과 같더라는 고백이 나오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행동으로 성경을 지키는 것이라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그 생각들과 고집들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거꾸로 가고 있기에 이것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속사람에 하나님의 의가 있으면 그 행동이 자연스럽게 성경대로 살게 되는데, 반대로 성경을 지켜서 행동하는 것이 성경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십자가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반대쪽에 있는 것이 원수입니다.
바울사도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오시면 그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의 몸체로 바꾸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몸에 물리적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서 몸에서 광채가 나듯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몸이 영광스럽게 된다는 것은 몸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만약 몸이 빛나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조작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비난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육신으로 살아내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도 영광을 돌릴 수 없는 사람, 그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볼 것이 보이지 않은 것이니 장님이고 어두운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못 박은 것입니다. 우리의 어두운 눈이 그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지금도 사람들은 성경대로 사는 것, 행동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행동이 없는데 어떻게 구원을 알아 볼 것이냐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행동으로 하나님의 의를 지킨다고 하면서 속사람에서부터 행동으로 나오는 하나님의 의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의가 그 속사람에서 행동으로 나오는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도 구원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에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없는 것은 자기 밖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맹인이고 귀머거리입니다. 자기 안에 컴퓨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 아무리 좋은 컴퓨터도 쓸 수 없으면 컴맹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있어서 그것이 자기 삶으로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거꾸로 행동으로 의로워지려 합니다. 그것 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입니다.
바울사도는 낮은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기다리면 그가 우리의 몸을 예수님의 몸과 같이 변화시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높은 자(사울)일 때는 알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가 그 이름을 낮추듯 낮은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영접하였더니 이전에 그렇게 되고 싶었던 육신,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육신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말씀에서 비롯된 육신, 즉 육신의 모든 것이 말씀을 이루어내는 것에 사용된 육신이기 때문입니다.
행동이 아니라 의만 있으면 된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때나 바울사도의 때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여호와만 알던 그때와는 달리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안다고 그때와 다르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 생각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그때는 율법을 행동으로 지키려 했고, 지금은 예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지키려는 같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이나, 예수님의 말씀이나 한 하나님에게서 나온 같은 의를 가진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의는 그것을 표현할 형식으로 지은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고 본성이 되면 그 사람의 육신을 통하여 그 의와 뜻이 행동으로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을 지은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이 자기 목적도 이행할 수 없는 신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반드시 추호의 누락도 없이 반드시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행동이 아닌 의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그래도 뭔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면 단언컨대 구원이 없는 심령일 수밖에 없습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3: 17-21) The shape of the body of glory
The citizenship of heaven can of course be obtained when the righteousness of heaven accepts his righteousness. It is as if immigrants to the United States can not obtain citizenship without accepting the American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 That is why the Lord's Prayer begins by praying that the will of the heavens will be made to the earth. Every beginning begins when a person obeys the will of heaven. The person who started it is a citizen of the sky. That is also the beginning of salvation.
The beginning of salvation and the obtaining of the citizenship of heaven means that there is life born from the beginning. This life is the life of a person whose righteousness is Christ. Life is not abstract. There is action, there is a horse is existential. That life, actions and words prove that the person has salvation. To say that Jesus is "the flesh of the Word" is like the righteousness of God in Jesus, which means that the word is manifest in the flesh.
Many people are trying to be righteous, and behaviors that they have tried to be saved are naturally manifested in heavenly citizenship and salvation. That is, the Word became flesh. That is salvation. And that life is what the Bible says. This is the opposite of trying to keep the Bible in action by righteousness. It is a life where a confession that it is the same as the Bible comes out when I look at the life when I have lived.
Believing in God is keeping the Bible in action, and those who are caught up in those thoughts and stubbornness that do not step back from believing that it should be, are going backwards and can not know this. If God's righteousness is in the inner man, his behavior will naturally live according to the Bible. On the contrary, he does not know that to act according to the Bible is to live according to Scripture. This is to be the Christ Cross and the enemy. The enemy is no different. The other side is the enemy.
The apostle Paul said we are people who wait for Christ. When Christ came into us, he said that He would turn us into a body of glory like Christ. People think this is what happens to the physical chemical changes in the body, and to the body's brilliance. But being glorified means that the body lives a life that represents God's glory.
For example, if the body shines, people will believe in God, but many will blame it for manipulation. But the righteousness of Christ at the center of the man can not but glorify God when he sees that man is living in the flesh as the word of God. He who can not see the glory, who can not see the God who is in him, is blind and blind. That is why Jesus was crucified. Our dark eyes did not know him.
Even so, people still do not admit it if they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Bible, nor are they justified by action. I do not have any action. But such people are no different from the Pharisees of Jesus. It is because God's righteousness from the inner to the inner is not seen and heard.
It is because it has never been alive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has come to life through action in the inner man. I have never lived a life of salvation. It is not seen even if it is outside of oneself which is not in oneself. It is blind and deaf as the Bible says. If you do not understand computers in your self, then you can not use any good computer. Anyone who has not seen the righteousness of God in himself, and has never seen it come into his life, will always be righteous in action. That's because I do not know it. That is the Pharisee.
The apostle Paul said that if we wait for Christ with a low heart, he will change our body like Jesus' body. It was something that he could not know when he was a high man (Saul). He received the righteousness of Christ with a low heart, as he lowered his name, and became a flesh that had previously wanted to be like that, the body that lives according to the word of God. That's just like Jesus. Because the body of Jesus is the body that is derived from the Word, that is, everything in the body that is used to fulfill the Word.
People do not believe that if they just have to do things, not actions. This is the time of Jesus or the time of Paul the Apostle. It is a big mistake to think that, unlike those days when people knew only Jehovah now, they knew objectively the existence of Jesus. It is clear that he can not be saved because of that thought. At that time, we tried to keep the law in action, and now it is the same faith that keeps the word of Jesus in action.
It is a word with the same righteousness that comes from the law of God, from the word of Jesus, or from one God. The Word is tha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life in a person who created it in the form of expressing it, and when it is natures, its righteousness and its will come out through the flesh of the person. This is the purpose of man. The purpose is to be sure without the omission of gospel unless we believe that God is a god that can not fulfill its purpose. If it does not happen, it is unbelievable that you are saved by righteousness, not by action, but if you think that you should act on something, then you can not but be a spirit without 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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