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3:1-10)
유대인들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쳐 성전에서 걷고 뛰게 한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놀랐지만, 베드로는 자신과 요한의 권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일은 오히려 유대인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온 선지자들이 말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임을 전한다. 그리고 이 예수를 믿을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의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베드로의 이 설교는 기적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설명한다. 베드로의 이 설교가 필요한 이유는 기적의 원천에 관한 사람의 생각과 베드로의 설교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기적의 원천이나 동력에 관한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건 결국 구원의 차이다.
사람은 앉은뱅이가 걷게 되는 기적은 초인적인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보다 초월적인 존재가 기적을 일으킨다고 믿는다. 당연히 하나님도 그런 분으로 믿는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그런 초월적 존재 중에서 다른 존재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런 존재가 구원을 베푼다고 믿는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람의 그 기준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오히려 능력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은 외면하고 오히려 가난을 해결하는 건 그리스도의 직임이 아니라고 말하기에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믿음이 앉은뱅이를 걷게 했다고 설교한다. 우리가 베드로의 정체성을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 말은 곧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사실 오늘날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믿음도 과거 유대인의 믿음과 다르지 않다. 기적이라면 보이는 세계의 상식과 과학을 넘어서는 신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타나고 육신으로 인지하는 세계를 본질로 믿기에 그 본질에 초인적 영향을 끼치는 능력을 기적이라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능력을 주관하는 분이라고 믿는다. 가난을 해결하고, 육신의 질병을 고치는 예수,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대로 기이한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하는 예수는 그런 예수가 아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는 그런 예수가 고친 게 아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행한 기적은 육신의 질병을 고친 게 본질이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영혼이 성전에 들어가서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능력이고 기적이다.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믿음이 성전에 들어가서 기쁨을 누리게 하는 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기적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나사렛 예수, 세상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는 전혀 메시아가 될 수 없어 건축자가 버리는 돌 같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걸 믿는 믿음이어야 한다. 오늘날 신앙인들은 자기가 이런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지는 재고해 봐야 한다.
선한 존재가 나올 수 없는 나사렛에서 온 예수를 믿는다는 건 놀랍게도 우리 자신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믿는 믿음의 근거다. 예수님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다는 자체가 바로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의미라는 걸 믿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이 생각에 늘 조심스럽다. 예수님과 자신이 같은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정체성 그대로 우리도 죄가 없다는 걸 믿는 믿음이 부족하다. 기도할 때 마다 회개하는 게 그 증거다.
앉은뱅이를 고친 하나님의 능력은 다음 아닌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뻐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사람이고 예수님과는 다르니 예수님처럼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겸손 같은 불신은 성전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늘 회개해야 하고, 행여 하나님께 무언가 잘못하거나 하나님께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죄가 내 행동에 있다고 책망하실까 두려워한다. 교회에 가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 증거다. 가지 않으면 벌을 받는 곳이 기쁨의 장소라고 말하는 건 정신 승리일 수는 있지만 신앙고백은 될 수 없다.
나사렛 예수를 믿는 믿음은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
우리에겐 정말로 나사렛 예수가 앉은뱅이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신앙을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뻐하는 신앙으로 바꾼다. 이건 단순한 경험의 변화가 아니다. 이건 정체성의 변화이자 존재의 변화다. 즉 생명이 바뀌는 변화다. 이걸 성경이 거듭남이라고 한다. 베드로 이 믿음이 있어야 우리가 멸망에 빠지지 않고 구원을 얻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나 자신을 순종하느냐가 우리의 구원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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